2004년부터 함께 작업, 작품 뒤엉키게 조합한 방식 그 난해함
서울 강남 아틀리에 에르메스서 2025년 2월 2일까지
199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의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서 만난 두 사람은 2004년부터 스튜디오 내에서 행하는 조각·회화는 물론이고 대규모 공공 설치 작업과 프로젝트형 갤러리 운영, 전시기획, 출판, 커뮤니티 워크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다작을 하는 이들에 관한 정보가 많음에도 두 사람의 작업은 여전히 난해하게 다가온다. 다양한 구성 요소들을 식별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뒤엉키게 한 조합 방식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시공간적으로 출처가 먼 것들의 이질성을 전혀 개의치 않고 이식해 부조화를 조장하는 일, 논리나 아름다움보다는 놀라움을 추구하는 일, 때로는 희화화를 통해 불경함을 야기하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여러 점의 인체 해부도가 제시되는데, 신체 장기로 치환된 인간은 형이하학적인 물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섹슈얼리티와 충동, 탕진 욕구처럼 내부의 힘이 외부로 발현되려는 위험한 신호 역시 안과 밖이 뒤집히면서 백일하에 노출된다. 두 사람의 작품 중에 흡연과 알코올에 관한 모티브가 유난히 많은 것은 그런 방종과 탐닉의 문화에 깃든 개인의 자유와 열정, 어리석음을 흥미롭게 관찰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작업은 넘치는 시각적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어떤 단일한 독해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수집한 사물과 아이디어가 의미의 전달체라기 보다는 용도에 봉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사물의 수집은 '샘플링'에 다름없고 기억의 파편들을 모으는 것이다. 거기에 내포된 의미는 대부분 개인적인 기억이나 감정과 연루되는 것이기에 작가와 관객은 각자 자기만의 경험에 기대어 그 의미를 생성할 수밖에 없다.
'편집증의 낙원'은 정보 과잉에도 불구하고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는 시대에 대한 은유이자, 노출된 수많은 사물들 사이에서도 편집증의 호사를 동경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궁금증 앞에서 서성거릴 관객들이 만나는 예술 세상을 은유한다.
https://www.news1.kr/life-culture/performance-exhibition/561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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