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라_ 풍경: 한 지점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멀어지는 확산운동_ sound, installationin collaboration with Jang Younggyu_ dimensions variable_ 2012
김소라는 사냥을 한다. 누군가는 쫓고 누군가는 쫓긴다. 그 간극이 사라지면 이 게임은 끝난다. 소리로만 경험하는 멧돼지 사냥, 거꾸로 선 풀, 폭포,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테이프 조형물은 무언가에 고착되지 않는다. 미끄러지고 흔들거리며 퍼진다. 직선의 운동은 소리와 사람의 움직임에 의해 수평 운동 혹은 나선 운동으로 전환된다. 형태는 흔들리고 움직인다. 그 옆에는 불변할 듯 웅장하게 서 있는 기념비가 서 있다. 두 수직의 대비가 전시장을 채운다. 시선을 돌린다.
하나의 색이 가로 막는다. '(불)가능한 풍경'과 '(Im)Possible Landscape'가 프레임을 구성한다. 사각형에 무엇이 어떻게 수렴할지에 대해서 가로막는 벽의 균일한 색이 명증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은 즉시 깨진다. '저' 뒤편에 비슷한 톤의 사각형이 안개 가득한 기묘한 상태로 존재한다(문범_ Secret Garden#301 Jade Green Light Blue_ 2012). 여린 오브제에 도시가 '겨우' 놓여 있다(김동연_ 성스러운 도시 12_ The Holy City_ plywood, cloth, acrylic_ 57x293x262cm_ 2012). 명증해 보이던 프레임 안 세상은 모호하고, 연약 할 수도 있다. 안개 속을 거닐 듯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불현듯 지름 1m 가량의 구체와 마주한다(정서영_ 눈덩이_ resin, acrylic_ 100 cm round each_ 2011). 거대한 눈덩이를 '닮아' 있다. 어디서 굴러 온 것일까? 녹지 않는 것을 보니 눈덩이는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눈덩이로 보인다. 불현듯 나타난 하나의 오브제가 모호함을 단단하게 한다. 걸음은 좀 더 조심스러워졌고, 시선은 더욱 예민해졌다. 이동을 위해 시선을 옮긴다.
대각선에 또 다른 눈덩이가 있다. 방금 본 그것과 이것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같은 구체,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리고 안개도 하나가 아니다. 세 개이다. (문범_ Secret Garden#301 Jade Green Light Blue_ 2012, [Possible Worlds #528, Yellow, Gray], 2010, [Possible Worlds #526, White, Wedgewood Blue], 2008). 불투명한 세계가 나의 몸에 덕지덕지 붙는다. 방향을 잡아보려 하지만, 지도마저 지시해주지 않는다(정서영_ 괴물의 지도, 15분_ ink on paper_ 2008). 오히려 지도는 우회화고 서성이게 한다. 여기에서 저기로 가기 위한 최적의 방향은 사라지고 성공할 수도 혹은 실패 할 수도 있는 미로가 내 앞에 있다. 이제 모든 걸음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이제 모든 것이 풍경이다.
'지시'하는 세 개의 문장이 있다. 산을, 나무를, 강을 보라고 한다. (김범_ 풍경#1_marker on canvas_ 82 x 57cm_ 1995 ). 전시 제목으로 구획한 프레임의 뒷면 인듯하다.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사라진다. 또 다른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사라진다. 떠오르고 사라지는 과정의 연속. 그 앞에 서 있었을 수많은 사람이 떠 올렸을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모두가 '풍경#1'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수렴한다. '나'만의 풍경이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지 않는다. 풍경은 현관 열쇠 일수 있고, 자동차 열쇠 일수도 있다. (김범, 현관 열쇠, 2001, 자동차 열쇠 #3, 2001). 누군가가 생각했을 또 다른 풍경을 나누는 것, 그것이 지금-여기의 풍경이다.
제안된 명증한 것은 애초에 없었다. 그저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운동과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내부와 외부의 흘러들어감과 흘러나옴.
대각선으로 마주한 같으면서도 다른 두 개의 눈덩이가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는 그 어떤 순간의 한 장면 같다. '겨우' 놓여 있는 도시를 지탱하는 언제 주저앉을지 모르는 지지대의 유려한 곡선(김동연_ 성스러운 도시 12_ The Holy City_ plywood, cloth, acrylic_ 57x293x262cm_ 2012)은 저 멀리 뒤편의 김홍주의 알 수 없는 서예 혹은 언덕, 혹은 그 무엇의 흔적/실체(김홍주_ 무제_ 1994)와 중첩된다. 그리고 전시장 초입, 웅장한 기념비 옆에서 미끄러지고 흔들거리며 퍼지던 풍경(김소라_ 풍경: 한 지점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멀어지는 확산운동_ Mixed media_ dimensions variable_ 2012)의 잔상과도 중첩된다.
뼈대만 남은 집과 도로가 바닥에 정착하지 못하고 힘겹게 놓여 있다(김동연, [성스러운 도시 12], 2012). 지금도 어딘가에서 건설되고 있는 웅장함의 한 순간인지, 아니면 폐허로 변하는 그 어떤 순간인지 알 수 없다. 웅장함은 폐허로, 폐허는 다시 웅장함으로 이동할 수 있다. 풍경이 사라졌다가 또 다른 풍경으로 등장한다. 과도한 도시개발은 이 과정을 촉진시킨다. 결국 풍경은 '기억'으로만, 혹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오마주로만 존재한다(강홍구_ 그린벨트-세한도_ 1999~2000, [사라지다-안개], 2009, 그집-암벽_ pigment print , ink, acrylic_ 200 x 105cm_ 2010).
부재하는 풍경, 끝없는 없음과 마주해야하는 순간 뒤편에는 영화의 가장 '마지막 컷'이 끊임없이 연속된다(오용석_끝없이_ 2012). 마침표가 사라져 모든 서사가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상황이다.
거대하고 불투명한 안개 공간이 몸을 휘감는다(이기봉_ Mixed media_ dimensions variable_ 2012). 짙은 안개와 습기 때문에 그 전모, 깊이를 파악할 수 없다.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길이 겹치고, 소멸하면서 이곳으로 수렴한다.
불투명한 안개를 벗어나니 외부의 하나의 풍경이 보인다. 그 어떤 것보다 명증해 보이는 이 세계는 스스로 빛을 발하며 'PERF-ECT'라 한다(김나영 + 그레고리마스_ Acceptance_ neon lights, steel_ 780 x 570 x 200cm_ 2012). 그러나 PERF와 ECT 사이에 놓인 '-'가 '완벽함'의 '불완벽함'이라는 역설을 야기한다. 불확실한 존재감을 외부에서 내부로 그리고 유리에 반영된 비물질의 형태로 쏟아낸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내부와 외부의 간섭, 개입, 조응, 수용, 거부 등 모든 상황은 추상적으로 제시된다(김동연_ Interchange 12_ plywood_ 2012). 가볍지만 무겁게.
파편과 파편이 거대함을 이룬다. 문화적 레퍼런스에서 추출한 유토피아에 대한 집단적 열망과 실패가 파편을 이루며 상호 조응한다. 신화적 마천루, 실현되지 못한 무수한 빌딩들,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고속도로, 베니어판, 방랑자, 석양을 향해 질주하는 카우보이, 미로. 그리고 여기에 작가의 개인적 서사가 더 해진 콘크리트 덩어리(이불_ 나의 거대서사_ 바위에 흐느끼다..._ 2005). 'PERF-ECT'(완벽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세계)의 간섭을 받으며, 조응을 하며 나의 거대서사를 구축한다. 그리고 이를 에워싸는 과장된 색채에 녹아든 현실의 상투성(공성훈) 개_ 2004, 소나무_ 2010, 모닥불_ 2010, 담배피우는 남자(태종대)_ 2011, 눈바람_ 2011, 돌 던지기_ 2012). 조심스럽게 나마 옮기던 발걸음/시선은 광활하게 트인 전시장에서 오히려 멈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풍경(전시장 내부만 아니라 외부의 '삶'까지를 포함한)을 떠올린다.
추상적으로 퍼져 나가는 이 도로는 어디로 향하는가? 이제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통로와 마주한다. 이곳을 지금까지의 감각을 통해 매달기와 구르기(김범, [2개의 무제(매달기와 구르기)], 1992)를 통해 몸을 움직이고, 변신하여(김범, [바위가 되는 법]) 지나야 하지 않을까? 눈덩이(정서영_ 눈덩이_ resin, acrylic_ 100 cm round each_ 2011)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여기에 있는 것처럼 이제 나도 어딘가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일지에 숲에서 들리는 소리만 적어본 적도 있어요. 숲이 조용하고 고요하다지만 다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에요." (편혜영, [서쪽 숲에 갔다], 문학과지성사, 2012 중에서) 모호한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리일까 귀를 귀울여도 분명하지 않다. 어디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알 수 없다. 피로하다. 그러나 무언가를 들었다면, 그 정체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소리를 쫓는 모험은 시작될 것이다. 어쩌면 어디서, 어떻게 들리는지 모르기에 그 모험은 지속될 것이다.
이대범, 미술 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http://www.theartro.kr/arttalk/arttalk.asp?idx=33
이대범, 미술 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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