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In Daegu 2011
Now In Daegu 2011: 대구육상선수권대회 기념전시
<예술의 이익 What is Art Worth?: 국제미디어아트전>
주최: 대구광역시
주관: (재)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기간 : 2011년 8월 24일 – 9월 18일
전시소개글:
예술의 이익은 예술의 가치와 다르다. 가치의 사전적 의미는 ‘대상이 인간과의 관계에 의하여 지니게 되는 중요성’을 의미하는 반면, 이익은 ‘일정 기간의 총수입에서 그것을 위하여 들인 비용을 뺀 차액’을 말한다. 예술 담론에서는 이익이라는 경제학적 용어 대신 가치나 의미라는 철학적 용어를 흔히 사용하며, 그 미학적 존재의 의미들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최근 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요컨대 예술 행위를 통해 “그것이 진실인가”라는 질문 대신, “쓸모가 있는가”, “얼마만큼 가치 있는가” 또는 “팔 수 있는 것인가” 같은 질문이 우선시 된다. 예술의 목표는 이제 절대미의 추구가 아니라, 실행성performativity의 역량으로 판단된다. <예술의 이익: What is Art Worth?>전은 이러한 현상을 인지하며, 현대 예술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아닌 이익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다음은 <예술의 이익>전이 창출하는 이익들이다.
우선 시기적으로는 <예술의 이익_국제미디어아트전>은 세계3대 메이저 스포츠대회 중 하나인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기념한다. 미디어 아트가 가지는 미래지향적 이미지는 스포츠와 예술의 만남을 가능케 하며, 도시 이미지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채택된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에서 아이러니컬하게 드러난다. 강영민은 이번 스포츠행사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국기에 하트를 넣은 <만국기>를 통해, 전쟁의 역사와도 함께 하는 국기들과 국가간의 대결이라는 국제 스포츠경기가 내포하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전복한다. 미디어 아트가 가져온 복제 가능함이라는 특성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모더니즘 어법에서 중시하는 진본성 authenticity이나 전통의 권위와 거리를 둔다. 피필로티 리스트의 비디오영상에서는 과거 비디오가 자주 만들어낸 컬러풀한 오류와 노이즈 속에서, 계속적으로 넘어지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이며, 이는 목적지향적 사회에서 오류가 난 상황들이 예술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둘째로, 전시장은 76년 완공된 상업은행 건물로, 지난 10여 년간 비워져 있다가 현대미술과 만나 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화이트 큐브가 아닌 미술전시장은 그만의 정치적/미학적 의미를 갖는다. 참여 작가들은 금고와 현금인출기 등을 사용한 설치작품들을 제작 하거나, 자본교환을 위한 장소로서의 은행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한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권태의 섬>에서 은행 금고에서 사용하였던 캐비닛들을 연결하여 건축적 구조물로 변환하거나, 은행에 걸려있던 포스터에 낙서를 더해 예술작품으로 바꾼다. 디륵 플라이쉬만의 작가지원금을 직접 관객에게 나누어 주는 행위는 은행의 기능에 예술을 집어넣어 그 문맥을 뒤튼다.
세 번째로, <예술의 이익>에서는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지정학적 논리가 만든 미학의 이질적 다원성이 존재한다. 김구림이 제작한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 <24분의 1초의 의미>에서는 60년대 개발정책으로 인해 신구가 뒤섞인 서울의 풍경과 하품하는 예술인이 교차편집 된다. 빠르게 근대화되는 사회와 권태로운 지식인의 모습이 뒤섞인 이 영상작품에서처럼, 이번 전시는 보편지향적 대서사를 강조하는 대신, 이질성을 질서의 영역으로 편입시켜 다양한 목소리의 다원성과 차이성을 주장한다. 백남준의 65년도 퍼포먼스 영상작품에서부터, 장영혜중공업의 텍스트에 기반하는 웹아트, 안유진의 퍼포먼스 영상 등을 함께 전시되며, 이는 지정학적 논리들이 만드는 미학의 이질성들이 동시대에 공존함을 보여준다.
과거 모더니즘적 시각에서 예술은 부차적인 놀이이며, 진짜 삶은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리처드 호가트가 그의 책 <여가의 사용>에서 이야기하듯, 문화 생활은 일상생활의 고된 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후기자본주의시대인 지금, 예술은 더 이상 일상적 삶과 연관 없는 하나의 도피가 아니며, 다시금 예술은 새롭게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예술의 이익>은 재편된 사회에서 예술이라는 잉여적 가치의 존재이유와 예술가라는 계급의 존재의 당위성, 예술전시라는 문화상품을 생산한다는 행위의 잉여가치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현재, 예술을 생산하는 자와 유통하는 자, 소비하는 자와 바라보는 자가 기대하는 예술을 통한 이익은 무엇인가.
photographed by Woo Sup Hwang
<예술의 이익 What is Art Worth?: 국제미디어아트전>
주최: 대구광역시
주관: (재)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기간 : 2011년 8월 24일 – 9월 18일
전시소개글:
예술의 이익은 예술의 가치와 다르다. 가치의 사전적 의미는 ‘대상이 인간과의 관계에 의하여 지니게 되는 중요성’을 의미하는 반면, 이익은 ‘일정 기간의 총수입에서 그것을 위하여 들인 비용을 뺀 차액’을 말한다. 예술 담론에서는 이익이라는 경제학적 용어 대신 가치나 의미라는 철학적 용어를 흔히 사용하며, 그 미학적 존재의 의미들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최근 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요컨대 예술 행위를 통해 “그것이 진실인가”라는 질문 대신, “쓸모가 있는가”, “얼마만큼 가치 있는가” 또는 “팔 수 있는 것인가” 같은 질문이 우선시 된다. 예술의 목표는 이제 절대미의 추구가 아니라, 실행성performativity의 역량으로 판단된다. <예술의 이익: What is Art Worth?>전은 이러한 현상을 인지하며, 현대 예술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아닌 이익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다음은 <예술의 이익>전이 창출하는 이익들이다.
우선 시기적으로는 <예술의 이익_국제미디어아트전>은 세계3대 메이저 스포츠대회 중 하나인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기념한다. 미디어 아트가 가지는 미래지향적 이미지는 스포츠와 예술의 만남을 가능케 하며, 도시 이미지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채택된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에서 아이러니컬하게 드러난다. 강영민은 이번 스포츠행사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국기에 하트를 넣은 <만국기>를 통해, 전쟁의 역사와도 함께 하는 국기들과 국가간의 대결이라는 국제 스포츠경기가 내포하는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전복한다. 미디어 아트가 가져온 복제 가능함이라는 특성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모더니즘 어법에서 중시하는 진본성 authenticity이나 전통의 권위와 거리를 둔다. 피필로티 리스트의 비디오영상에서는 과거 비디오가 자주 만들어낸 컬러풀한 오류와 노이즈 속에서, 계속적으로 넘어지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이며, 이는 목적지향적 사회에서 오류가 난 상황들이 예술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둘째로, 전시장은 76년 완공된 상업은행 건물로, 지난 10여 년간 비워져 있다가 현대미술과 만나 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화이트 큐브가 아닌 미술전시장은 그만의 정치적/미학적 의미를 갖는다. 참여 작가들은 금고와 현금인출기 등을 사용한 설치작품들을 제작 하거나, 자본교환을 위한 장소로서의 은행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한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권태의 섬>에서 은행 금고에서 사용하였던 캐비닛들을 연결하여 건축적 구조물로 변환하거나, 은행에 걸려있던 포스터에 낙서를 더해 예술작품으로 바꾼다. 디륵 플라이쉬만의 작가지원금을 직접 관객에게 나누어 주는 행위는 은행의 기능에 예술을 집어넣어 그 문맥을 뒤튼다.
세 번째로, <예술의 이익>에서는 로컬과 글로벌이라는 지정학적 논리가 만든 미학의 이질적 다원성이 존재한다. 김구림이 제작한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 <24분의 1초의 의미>에서는 60년대 개발정책으로 인해 신구가 뒤섞인 서울의 풍경과 하품하는 예술인이 교차편집 된다. 빠르게 근대화되는 사회와 권태로운 지식인의 모습이 뒤섞인 이 영상작품에서처럼, 이번 전시는 보편지향적 대서사를 강조하는 대신, 이질성을 질서의 영역으로 편입시켜 다양한 목소리의 다원성과 차이성을 주장한다. 백남준의 65년도 퍼포먼스 영상작품에서부터, 장영혜중공업의 텍스트에 기반하는 웹아트, 안유진의 퍼포먼스 영상 등을 함께 전시되며, 이는 지정학적 논리들이 만드는 미학의 이질성들이 동시대에 공존함을 보여준다.
과거 모더니즘적 시각에서 예술은 부차적인 놀이이며, 진짜 삶은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리처드 호가트가 그의 책 <여가의 사용>에서 이야기하듯, 문화 생활은 일상생활의 고된 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후기자본주의시대인 지금, 예술은 더 이상 일상적 삶과 연관 없는 하나의 도피가 아니며, 다시금 예술은 새롭게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예술의 이익>은 재편된 사회에서 예술이라는 잉여적 가치의 존재이유와 예술가라는 계급의 존재의 당위성, 예술전시라는 문화상품을 생산한다는 행위의 잉여가치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현재, 예술을 생산하는 자와 유통하는 자, 소비하는 자와 바라보는 자가 기대하는 예술을 통한 이익은 무엇인가.
photographed by Woo Sup Hwang
기획: 양지윤
Participating Artists: Youngmean Kang, Nakbeom Goh, Nayoungim+Gregory Maass, Youngsup Kim, Nikki Lee, Dirk Fleischmann, Chan Kyong Park, Nam June Paik, Yangachi, Biho Ryu, Jaye Lee, Younghae Chang Heavy Industries, Mirae Jeon, Jisuk Jeong, Pipilotti Rist, TimeBank Aug. 2011 Daegu,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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