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작업 〈헨리 무어풍 수석; 오리피싱 1〉(2025)은 일견 대상에 대한 타자적 인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동양적 미학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수석을 두고, 그들은 특정 동굴이나 바위를 지시하지 않은 채 영국 조각가의 이름을 빌려 “헨리 무어풍”이라 부른다. 수석 앞에서 서구 근대 조각의 상징을 말하는 순간, 작가는 동양적 미학의 타자로서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추상적 대상을 향한 투사의 가능성을 타자의 시선으로 인식한다고 해서 그 대상의 관념적 지위까지 온전히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헨리 무어 조각의 빈 공간이 지금, 여기의 시간으로부터 분리된 “개념적 촉각성”의 근거가 되는 공간임을 생각해 본다면, ‘헨리 무어풍’이라는 명명은 대상의 자율성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역설적으로 확인한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에 따르면, 헨리 무어는 “머릿속에 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구체적 형태를 끄집어낼 줄 아는” 조각가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로잘린드 크라우스, 『현대조각의 흐름』) 관념이 곧 물질로 직역된다는 의미에서 그의 조각은 돌의 촉각적 감각 아래 관념적 대상을 투사하는 수석과 다르지 않다. 즉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는 타자로서 수석을 바라보지만, 동시에 수석의 관념적 공간을 서구 조각의 구멍을 통해 타자의 세계와 연결한다. 그런 의미에서 ‘헨리 무어풍’ 수석은 대상에 대한 부정인 동시에, 그 부정이 곧 긍정을 위한 조건으로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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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도록;《안티-셀프: 나에 반하여》에 관한 노트 Notes on 'Undoing Oneself' 에서 발췌
장지한 미술비평
Notes on Undoing Oneself
— Jang Jihan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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