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2025년 2월 2일까지 만날 수 있는 난해한 작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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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지난 11월 24일부터 2025년 2월 2일까지 아티스트 듀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개인전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Paranoia Paradise>를 개최한다.

2004년부터 공동 작업을 해온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지난 20년간 아티스트로서 전방위적이라 할 만큼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함께 펼쳐왔다. 스튜디오 내에서 행하는 조각과 회화 작업은 물론이고, 대규모 공공 설치 작업과 프로젝트형 갤러리 운영, 전시기획, 출판, 커뮤니티 워크숍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활동은 쉼 없고 늘 부지런했다. 다작의 작가이기도 한 이들은(이번 전시에서도 무려 60여 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매 전시마다 각양각색의 형상들을 대거 소개한다. 이 덕분에 관객들은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시각적 정보를 늘 차고 넘칠 만큼 풍부하게 제공받는다. 허나, 이상한 점 한 가지. 그렇게 많은 정보 속에서도 우리는 늘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작품을 잘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의 작품 세계에는 모든 것이 얽혀 있다. 상투적인 것과 고급 예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산물들과 지식, 취향이 서로 얽혀져 있다. 20세기에는 극동의 나라로 여겨졌던 한국의 서울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여성과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퐁튀스 휠텐Pontus Hulten이 세운 고등조형예술학교에서 미술이론을 배운 독일 남성. 이 둘은 각자 자신만의 문화적 스토리를 가지고 파리로 유학을 왔고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라는 교차점에서 조우한 것. 여전히 서로에게 외국어인 프랑스어로 소통하며 지내는 이들의 삶에서 문화적 다양성은 곧 일상이다.

김 & 마스의 작업은 여전히 난해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이들의 목표가 곧 그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 다양한 구성 요소를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뒤엉키게 한 조합의 방식이 특이하기 때문에 작품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공간적으로 출처가 먼 것들의 이질성을 개의치 않고 이식하여 부조화를 조장하는 일, 논리나 아름다움보다는 놀라움을 추구하는 일, 때로는 희화화를 통해 불경함을 야기하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이는 보는 이들에게 흥미와 더불어 불편함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언어유희에 가까운 제목은 작품의 의도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드는데,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에서 기대하는 정제된 양식이나 공감의 정서와는 거리가 먼 혼종과 그로테스크의 세계인 것이다.

작가는 이를 “프랑켄슈타인 化(Frankensteining)”라 일컫으며, 여기저기서 수집한 사물과 아이디어를 일부씩 떼어내고 재조립해 기이한 결과를 만든다. 공원에 버려진 헬로 키티 조형물을 주워 작품으로 부활시킨 ‘반야 키티(Kitty Enlightment, 2004)’가 그 예시. 순수함의 상징물이지만 때가 탔다는 이유로 버려진 헬로 키티. 작가는 더러움을 씻기고 온기를 채워 이 헬로 키티를 회생시키고자 했다. 귀여움을 담당하느라 애초부터 갖지 못한 입도 선사해, 기쁨과 슬픔이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야누스처럼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키티는 마침내 깨달음(반야)에 도달한다.

닥터 프랑켄슈타인 코스프레가 유용하게 활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인체야말로 주체의 취약함이 드러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김 & 마스는 이번 전시에서 여러 점의 인체 해부도를 제시한다. 신체 장기로 치환된 인간은 형이하학적인 물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섹슈얼리티와 충동, 탕진 욕구 같은 내부의 힘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분출한다. 흡연과 알코올에 관한 모티브가 유난히 많은 것도 그런 방종과 탐닉의 문화에 깃든 개인의 자유와 열정, 어리석음을 흥미롭게 관찰하기 때문. ‘거품은 남근을 따른다(Foam Follows Phallus 2.0, 2024)’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모더니즘의 모토를 모방하면서 은근히 놀리는 언어유희를 즐긴다.

작품 ‘쩔었어(I nailed it, 2024)’는 미술사의 여러 요소들을 가져오면서 그것들을 인용하는데 방점을 두기보다는 작업을 완수한 본인의 성취를 강조한다. 인체 변형으로 유명한 피카소의 드로잉을 재현하고 지시하는 이 작업은 물감이나 붓이 아니라 ‘못 박기(nailing)’ 행위로 완성되는데 그 방법은 못으로 옵아트의 한 획을 그은 귄터 외커의 작업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작은 못을 촘촘히 박는 행위는 몰입을 통해 복잡한 사유를 사라지게 하는 수행의 과정이 된다. 완성한 후 내지르는 “마침내 내가 해냈어!(I nailed it)”라는 탄성은 미술사의 모든 참조물들을 뒤덮는다.

김 & 마스의 작업은 넘치는 시각적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어떤 단일한 독해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래된 사물의 수집은 ‘샘플링’에 다름없고 기억의 파편을 모으는 것이다. 각자의 개인적인 기억이나 감정이 연루되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는 자기만의 경험에 기대어 그 의미를 생성할 수밖에 없다. ‘편집증의 낙원’, 그러니까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는 정보 과잉에도 불구하고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는 시대에 대한 은유다. 노출된 수많은 사물들 사이에서도 편집증의 호사를 동경하는 작가, 그리고 작품에 대한 궁금증 앞에서 서성거릴 관객들이 만나는 예술 세상을 은유하기도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

http://www.dazedkorea.com/news/article/2882/detail.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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