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자연구소, ‘세계문자심포지아 2018 황금사슬’ 연다

 2018.10.03  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10월 4일부터 7일까지 수성동 계곡ㆍ영추문ㆍ옥인동 일대서

(사)세계문자연구소(대표이사 임옥상)와 종로구가 공동으로 ‘세계문자심포지아 2018: 황금사슬’을 10월 4일부터 7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서울특별시,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네이버가 후원한다.

인간의 존엄을 향한 시민들의 내부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문화적 퍼포먼스 ‘문자는 파열이다’가 개막과 폐막행사에서 펼쳐진다. 또 ‘환대와 결속의 문자’라는 의미에서,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문자는 시민의 자기 해방에 이바지하는 도구라고 세계문자심포지아 2018의 양지윤 예술감독은 소개한다.

축제는 수성동 계곡, 경복궁 영추문, 종로구 옥인동 34-1, 상촌재, 공간 291 등 종로구의 세종마을 일대에서 열린다. 옥인동 34-1에서는 문자를 주제로 한 다양한 강연들과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가 진행된다. 이번 축제는 강병인글씨연구소, 종로문화재단, (사)세종마을가꾸기회, 박록담한국전통주연구소, 공간 291, 협동조합사진공간, 내외주가가 협찬단체로 참여한다.

행사 가운데 ‘개막 퍼포먼스 I’은 오는 10월 4일(목) 저녁 4시부터 6시까지 “강병인 글씨 퍼포먼스: 문자는 파열이다”가 통인시장 앞 정자부터 수성동 계곡에서 열린다. 파열은 내부의 에너지가 압력을 견디지 못해 순식간에 외부로 방출하는 현상이다. 문자는 갇히고 억눌린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는 파열이다. 사람 키높이의 천에 ‘문자는 파열이다’는 글귀를 세계 20여개 문자로 강병인은 쓴다. 참가자들은 강병인이 쓴 글씨를 들고 수성동 계곡으로 행진하며 세계문자심포지아 2018의 개막을 알린다. 이 글씨는 폐막 행사인 영추문 개방 퍼포먼스에도 사용된다. 개막과 폐막 행렬에 모두 참여하는 분들이 글씨를 나눠 갖는다.

또 10월 4일(목) 수성동 계곡에서는 ‘개막 퍼포먼스 II’ “권병준 퍼포먼스: 글쓰는 소리풍경”가 열린다.

손글씨를 쓸 때 펜과 종이의 마찰로 생기는 소리의 미세한 차이를 분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작업 노트엔 데이터를 받기 위한 수많은 가로와 세로의 변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작은 분별력을 위해 지난한 노력을 기울이던 시간이었다. 쓰는 행위, 그리고 모양새보다 소리에 집중하여 하나의 획에서 동그라미, 세모와 네모 등으로 형태를 확장시키며 나만의 사운드 타이포그라피에 빠져있었던 그때의 노트를 반추해 본다.

글씨를 쓰되 형상은 없고 소리만 남은 빈 공간을 세종마을에서 주운 자연과 일상의 오브제들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속삭임으로 채워가는 사운드 퍼포먼스를 들려주고자 한다.

이어서 강연 10월 6일(토) 낮 1시 30분부터는 옥인동 34-1에서 강연이 열린다. 먼저 1시 30분부터 2시까지 “김온, 과자의 문학적 혁명 #3”가 펼쳐진다. 과자 패키지의 활자를 단조롭고 평면적으로 읽어 나간다. 읽는 행위라는 매개 역할을 통해 소비를 유발하고 응원하는, 현란한 패키지의 크고 작은 문자들은 평등화 되어 한 편의 소리 시로 발현된다.

그리고 2시부터 3시까지는 “최병두, 도시와 문자: 도시경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연이 있다. 대도시는 문자로 가득 차 있다. 넘쳐나는 간판과 네온사인들. 화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자본주의 대도시들은 물적 건조 환경뿐 아니라 상징적 경관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 자본 축적에 이바지한다. 나아가 도시의 경관 자체가 텍스트로서, 과거 역사의 경제와 정치, 사회문화를 반영하는 기호로 해석된다. 또한 도시 재생을 통한 물적, 상징적 경관의 변화는 단순히 과거 경관의 유지 또는 복원이 아니라, 현재의 권력과 자본의 힘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3시부터 4시까진 “문강형준, 문자와 소설과 욕망: 쓰기, 읽기, 되기의 변증법”이 이어진다. ‘문자’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까? 토머스 하디의 마지막 소설 <무명의 주드(1895)>는 문자에 삶 전체를 건 한 석공의 이야기다. 문자를 읽고, 문자를 새기는 주드는, 하지만, 그 문자의 세계에 들어가려는 순간 매몰차게 거부당하며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리 시대는 더 이상 ‘주드’가 없지만 우리 역시 문자에 얽매인다. 카톡, 페북, 트위터라는 SNS 세계의 문자는 주드의 꿈이었던 그 문자와 다를까, 같을까? 이 강연은 <무명의 주드>를 출입구로 삼아 근대성, 근대 소설과 문자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나아가 SNS 시대의 문화를 통해 우리의 문화와 문자 간의 깊은 관계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려 한다.

이튿날 10월 7일(일) 역시 옥인동 34-1에서 강연은 계속된다. 먼저 낮 1시부터 “노성일, 크메르 문자의 유전자와 진화”가 있다. 크메르 문자에는 그 기원이 된 인도 문화부터 크메르루주의 학살로 인한 상처까지 캄보디아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앞으로 크메르 문자는 어떤 변화를 겪을까? 잠시 인류학자가 되어 크메르 문자의 진화상을 따라가 본다.

또 1시 30분부터 2시까지 “김온, 과자의 문학적 혁명 #3”이다. 과자 패키지의 활자를 단조롭고 평면적으로 읽어 나간다. 읽는 행위라는 매개 역할을 통해 소비를 유발하고 응원하는, 현란한 패키지의 크고 작은 문자들은 평등화 되어 한 편의 소리 시로 발현된다.

2시부터 3시까지는 “박민정, 더없이 투명한 가면 쓰기(지하련의 작품 함께 읽기)”가 이어진다. 1930 년대 작가 지하련의 소설 ‘체향초’를 함께 읽고, 여성 작가로서의 글쓰기를 수행한 그녀의 작업을 함께 돌아본다.

계속해서 3시부터 4시까지 “장정일,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밀라’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을까?”다. ‘음성 언어’와 ‘문자’에 더하여 ‘몸짓 언어’까지 구사하는 인간은 동물보다 풍부한 소통 도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보다 더 완벽한 의사소통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많은 경우 인간은 음성 언어와 문자로도 거짓말을 하고 몸짓 언어로도 거짓말을 한다. 반면 문자도 없이, 빈약한 음성 언어와 몸짓 언어만을 가진 동물은 인간보다 더 명료하고 완벽하게 소통한다. 인간은 몸짓 언어에 더 민감해지고, 말과 글은 자꾸 줄여야 한다. 그러면서, 할 수만 있다면 ‘제4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4시부터 5시까지 “김규항, 물신 세계에서의 문자” 강연이다. 21세기 공산주의를 말하는 ‘가장 위험한 철학자’가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는 코미디는 무엇을 말하는가? 스탈린주의 이후 서구를 휩쓴 신좌파와 포스트주의 흐름은 마르크스주의를 좀 더 지적이고 문화적인 것으로 만들어주었지만, 정작 변혁의 에너지는 소거해 왔다. 마르크스주의의 갱신이라 알려진 자유주의의 갱신이었던 셈이다. 대개의 급진적 문자들이 갱신된 자유주의에 ‘애완’되는 사태를 해명하고 넘어설 수 있을까?

행사에는 시민참여 퍼포먼스 “김유진, 엉덩이로 이름쓰기 연구-궁디체”도 있는데 10월 5일(금)과 6일(토) 낮 1시, 3시, 5시에 상촌제에서 열린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엉덩이로 이름 쓰기. 그런데 혹시 다른 나라에도 이런 문화가 있을까? 사람들은 언제부터 엉덩이로 이름을 쓰기 시작했을까? 왜 하필 다른 부위가 아닌 엉덩이일까? 엉·쓰 문화가 없는 베를린에서 시작한 엉덩이로 이름 쓰기 연구는 서울에 도착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 작가와 타인의 엉·쓰를 분석적으로 들여다보고 연구원들이 제시하는 ‘궁디체’의 개념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어느새 자신의 경험과 기억, 의식과 감각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물론 전시도 행사에선 빠지지 않는다. 10월 4일부터 7일까지 옥인동 34-1에서 구수현, 김나영&그레고리마스, 김정모, 노성일, 연기백, 클레가(Klega), 모 시라(Mo Sirra less) 작가의 참여로 열린다.

그 하나는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킴킴갤러리), 킴킴 세일즈 샵” 전시다. 예술가의 운명은 예술 작품의 질과 창의성 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원에도 의존하는가? 듀오는 경제적이고 예술적 관점에서 이를 조사하면서, 이 현상에 특별한 존경을 가져왔다. 킴킴 세일즈 샵은 사회의 경제적이고 문화적 발전을 위해 예술 작품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연기백 작가의 “On-going project” 역시 옥인 34-1에서 전시한다. 철거가 예정된 공간을 기준으로 ‘기록’이라는 문자의 기능에 주목한다. 동시에 의미화 되지 못한 주변화된 기록(흔적)들을 수집하고 그 물리적 특성들을 따라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몇 해 전부터 진행 중인 On-going project의 하나다. 이는 이용 가능한 빈 집이나 빈 공간에서 허용 가능한 기간 동안 머물면서 몸을 접촉하여 그 결을 읽어 보는 연작이다. 이곳에서는 내부와 외부에 남겨진 흔적들을 수집하고 기록하면서 그 과정의 부산물들로 전시한다.

마지막 날은 “폐막 퍼포먼스: 영추문을 열다”가 진행된다. 2018년 가을 굳게 닫혔던 영추문이 열린다. 10월 7일(일) 11시부터 12시까지 영추문에서 경복궁으로 이동하는 행사가 있게되며, 영추문은 2018년 11월 중으로 상시 개방할 예정이다. 경복궁의 서쪽 공간에는 경회루 앞 수정전(옛 집현전 터)을 비롯하여 흠경각, 사정전, 강녕전 등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역사적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경복궁의 서쪽문인 영추문이 열림으로써 인왕산과 경복궁을 연결 짓고 한글의 역사와 현실을 잇는 새로운 소통의 길이 생겨나길 기대한다.

‘문자는 파열이다’라는 글씨를 들고 주민들이 예술가들과 지식인들과 함께 경복궁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는 인간의 존엄을 향한 시민들의 내부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문화적 퍼포먼스다. 어진 임금을 기다리는 백성이 아닌 민주주의의 주인으로서 시민이, 지배의 문자가 아닌 해방의 문자를 구축해 나가야 함을 알린다. 열린 영추문은 경복궁과 집현전의 가치를 새롭게 할 것이다. 열린 영추문은 세종과 훈민정음의 가치를 새롭게 할 것이다.

<(사)세계문자연구소>는 2014년부터 해마다 세계문자심포지아를 열고 있다.

http://www.scriptsymposia.org/2018

https://www.koya-culture.com/mobile/article.html?no=114895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