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품 앞에 서면 ‘상상의 나래 편다’

https://www.segye.com/print/20101025003372

중견화가 고낙범 ‘컬러 포즈’展 들여다보니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멜랑콜리하다. 이성적으로 경험하거나 인식하기 어려운 세계다. 감당키 어려운 미스터리 요소도 있다. 작가 자신도 작업과정에서 30분 이상 물리적으로 버티기 어렵다고 했다. 그럴 땐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가 작업에 임하곤 한다. 기하학적 추상 작업에 몰두하는 중견 화가 고낙범(50)의 이야기다.

◇고낙범 작가는 기억과 느낌, 한 인물의 정체성까지 색의 코드로 환원시키려 한다. 그는 색의 연금술사를 자처한다.
“5각형의 꼭짓점을 이어가는 기하학적 추상작업은 분열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우주적 상상력과 만나기 쉬운 지점이라 생각해요.”
그는 2000년 중반 이후 ‘오각형’을 모티브로 한 기하학적 추상 작업을 하고 있다. 색의 다양한 변주 속에 무수히 많은 오각형이나 원이 중첩되고 퍼져나가는 형태를 더한 작업들로 사선(斜線)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톤을 지닌 살구색 오각형들로 피부를 크게 확대해 그린 듯한 ‘피부’ 연작이나 오각형의 나팔꽃 모양으로 중심에서 색들이 서서히 퍼지는 ‘모닝 글로리’ 연작 등의 작품에서는 색과 형태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역동성을 만든다. 색과 형태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처음에는 제가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규칙(rule)이 수평과 수직 개념이었죠. 색띠(스트라이프)나 인물화 같은 작업이 이 관념에 대입해 나온 작업입니다. 그러다 변화를 생각했더니 세상을 바라보는 개념을 먼저 바꿔야겠더라고요. 수평·수직과 물리적으로 다른 게 무얼까 생각하다 나온 것이 ‘사선’과 사선으로 이뤄진 오각형이었죠. 도상학적으로 자연이 원(圓)이고 문명이 사각형이라면 오각형은 그 중간이라고 생각해요. 움직이기 바로 직전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는 모든 대상을 색으로 환원해 해석한다. “색채를 언어화하는 것이 내 작업”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색 자체가 갖는 표현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모닝 글로리’.
“작가마다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저는 특히 색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타입이에요. 색은 어떤 언어로도 규정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죠. 그러나 동시에 심리적 상태나 사회적 상황을 다 대입할 수 있고, 또 시간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다양한 언어로 표현할 수도 있죠. 색의 연금술적 속성이지요.”
지난 7일 시작돼 11월30일까지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컬러 포즈(Color Pause)’ 전은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1989∼1995)로 일했던 작가가 작업을 시작한 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색에 대한 탐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시다.
초기 작업인 색띠 작업은 명화 속에서 색을 추출하고 이를 작가 나름대로 재구성하는 ‘뮤지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모네나 마네 등 인상주의 화가가 바다와 강을 그린 작품 속에서 푸른색을 채집해 분석한 뒤 그 결과를 수평의 색띠로 작업한 ‘풍경’은 전시장 입구의 10m 벽면 전체를 가득 메운다. 색띠 속 색들은 정교한 분석이 아니라 작가가 눈으로 스캐닝하듯 훑은 뒤 직관적으로 골라낸 것이다.
◇‘견고한 흐름’.
“색채에 대한 미의식은 무의식적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레드와 블루처럼 한국 사람은 대비되는 색이 있어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색깔 추출 작업은 초상화로도 이어진다. 바로크 화가 카라바지오(이탈리아·1571∼1610)의 ‘병든 바쿠스’ 속에서 추출해낸 7가지 다른 톤의 녹색을 이용해 일곱 남성의 초상을 단색으로 그린 ‘초상화 미술관-그린(Green)’은 묘사의 정교함보다는 색의 느낌으로 인물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나 기억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그는 영화와 공연의 내용을 평면 회화와 사진, 영상으로 표현하는 작업도 한다. 영화와 공연의 회화적 번안이다. “이미지 차원에서 공통분모가 있지요. 빛과 색이라는 관점에서도 소통이 가능합니다.”

세계일보 편완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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