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疊산중서용선繪畫

2021. 2. 24 - 2021. 6. 20

여주미술관

“만첩산중”의 ‘첩’을 회화 한 점으로 대입하면, 서용선 작가의 시리즈 전시 중 첫번째인 “만첩산중”은 100여점 이상의 회화들 사이를 비집고 걸어 다니고 넘겨다 보며, 회화의 산중을 헤매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http://yeojuartmuseum.com/wp/portfolio-items/1683/

  1. 전시 취지와 의미: 

‘만疊산중서용선繪畵’전은 치밀하고 꼼꼼하게 절제된 서용선 회화의 가장 원시적인 요소들을, 제한된 동선 안에서, 관객들에게 열어놓은 전시이다. 2020년 펜데믹 안에서 본격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누구나 갑자기 감지하게 된 지금의 시점에서 새로운 세기의 실마리를 찾는데 있어, 서용선 회화만큼 우리에게 적절한 대상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1. 전시 서평:

경기 민요 중 대표적인 민요의 ‘제비가’의 첫 구절은, 춘향가에서 이몽룡과 춘향이 업고 노는 대목에 쓰인 은유적 묘사 중 하나를 끄집어 내어 슬쩍 걸어 놓았다

“만첩산중 늙은 범 살진 암캐를 물어다 놓고 에허 어르고 노닌다”

판소리 장단보다 살짝 느린 도드리 장단에 어슷하게 걸어 펼치는 ‘제비가’의 첫 구절은, 춘향가 대목의 활기차고 화사한 분위기와는 완연히 다르다. 이제 청춘인 춘향과 이몽룡 사이에 무르익은 관계의 ‘안쪽’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던 춘향가의 ‘만첩산중’은. ‘제비가’에 이르러 콩깍지를 풀고“바깥쪽”으로 돌아 나와, 실재하는 ‘만첩산중’으로 살아난다… 개인의 ‘안쪽’을 걸어 나와 세상의 ‘바깥쪽’을 의식하게 되면서, 개인과 개인의 선택과 관계들이 얽혀서 움직이는, 미묘하게 거대한 세상의 깊이와 밀도가, 실재하는 ‘만첩산중’의 형세가 되어 발 밑에 들어서고, 늙은 범과 살진 암캐의 긴장은 ‘산중’을 헤매는 ‘나’를 숨죽이게 한다.

‘만疊처산중 서용선繪畵’에서 설정하는 ‘만첩산중’은 ‘제비가’의   ‘만첩산중’이다. 1974년에 발행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초판에서 아놀드 하우저는, 19세기는 1800년이 아닌1830년경에, 20세기는 1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20년에 와서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전쟁과 같은 큰 충격이 새로운 세기가 비로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긴 하지만 그 자체가 새로운 세기 자체를 만드는데 관여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결국 새로운 세기는 그 전 세기 중 후반에 시작된 선구적인 경향들이 본격적으로 심화되면서 형성된다는 그의 분석은, 2020년 펜데믹 안에서 본격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누구나 갑자기 감지하게 된 지금의 시점에서 중요한 관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용선은 1951년 생이고 작업의 양과 일관성, 시도와 대상의 다양성에 있어서 우리 미술계의 가장 주요한 입지를 차치하고 있다. 일제의 침탈과 한국전쟁으로 반세기를 보내고 나머지 반세기를 숨가쁘게 살아왔던 우리의 상황이, 아놀드 하우저가 다른 유럽미술사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극단적이지만, 세기의 시작과 그 토대의 근원에 대한 그의 직관대로라면, 지금의 시점에서 새로운 세기의 실마리를 찾는데 있어, 서용선 회화만큼 우리에게 적절한 대상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만疊산중서용선繪畵’를 기획하는데 있어 가장 큰 동기가 되었던 서용선 회화의 미덕은 ‘치밀하고 꼼꼼하게 절제된’ 회화의 범위 혹은 범주였다. 서용선 회화는, 보이는 세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내려는 회화의 본질적인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의식이 보아낼 수 있는 것들을 끝까지 보아내려고 하되, 의식을 넘어서는 추상이나 피상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고집이 서용선의 작업의 중심에 단단히 박혀있다. 그래서 서용선 회화는 작가 개인으로 제한된 ‘안쪽’을 넘어서는 범위의 ‘의식’ ,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잠재적인 신호와 증상을, 프레임 안에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산 중에서 길을 읽거나, 달빛만 남은 밤에 산을 떠돌았던 적이 있다면, 산 속의 길이란 사실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눈높이에 가득 들어 찬 나무 줄기들에 속거나 겁먹지 말고,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들이 가리키는 방향과 형세를 읽으며 걷는 편이 빠르다. 

‘만疊산중서용선繪畵’의 전시 구조는, 서용선 회화에 대한 기존의 담론과 수사의 코드들을 해제하고 회화의 가장 원시적인 요소들을, 제한된 동선 안에서, 관객들에게 열어 놓아 보려고 의도했다. 조금 불편하고 조심스럽지만 ‘산중을 헤매며 늙은 범이 살진 암캐를 물어다 놓고 어르고 노니는’ 장면을 목격하는 즐거운 경험이 되었으면 한다. 백여년전 게오르크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의 서문은 ‘산중을 헤매는’ 즐거움에 잘 어울린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                                -디렉터 김형남 

http://www.suhyongsun.com/2021/03/01/2021-2-242021-6-20-%EB%A7%8C%E7%96%8A%EC%82%B0%EC%A4%91-%EC%84%9C%EC%9A%A9%EC%84%A0%E7%B9%AA%E7%95%AB/






MayMa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