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미술 울타리 넘어 세계를 품는다

문이 열리고 웅장한 공간과 마주하는 순간, 감탄이 나온다. 천장 높이 5.4m, 가로 42m, 세로 24m의 전시장은 콘크리트벽을 노출시킨 민얼굴 그대로다. 24개 기둥을 잇는 미로 같은 통로에는 ‘대구 미술의 오늘’을 소개하는 회화 설치 조각 등이 놓여 있어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다. 대구 수성구 삼덕동 대구스타디움 근처에 자리한 시립대구미술관(관장 김용대)이 새로 마련한 ‘프로젝트룸’에서 막 올린 ‘메이드 인 대구’전의 모습이다. 이 도시에 터를 잡고 활동하는 구성수, 박종규 ,이교준, 이기칠, 정용국 등 9명을 통해 대구의 문화지형도를 그려낸 전시다.
지구촌의 이목이 쏠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개최하는 대구에선 요즘 스포츠와 맞물려 문화예술의 축제가 한창이다. 그중에서도 5월 개관한 대구미술관이 한국 미술사의 맥락에서 대구미술의 역사를 되짚어본 개관특별전과 수성구의 수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수성아트피아(관장 배선주)가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세 작가를 조명한 ‘다이내믹 커뮤니케이션’전이 눈길을 끈다. 

○ 대구미술의 어제와 오늘
격조 높은 전시와 치밀한 공간 연출, 세련된 도록 등 대구미술관은 신생 미술관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안정된 출발의 토대를 구축했다. 11월 20일까지 열리는 ‘메이드 인 대구’전은 이 지역이 자랑할 만한 작품들과 만나는 장이다. 밝은 색채에 도발적 문구를 써넣은 작품(이명미), 대형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호쾌한 붓놀림(권오봉), 방천시장 상해반점이 남긴 세월의 흔적을 재현한 설치작품(배종헌) 등은 지하수장고 옆을 개조한 개성있는 공간에서 빛을 발한다. 전시에 참여한 남춘모 씨는 “이 공간 덕에 대구미술이 더욱 풍요롭게 전개될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이곳에서 대구의 오늘과 내일을 내다봤다면 미술관의 4, 5전시실에서 열리는 작고 작가 정점식, 원로 여성화가 김종복전은 대구 화단의 역사를 대표하는 두 화가를 통해 대구미술의 뿌리를 더듬어간다. 정점식의 추상세계, 김종복이 보여준 색채의 향연 속에 회화의 깊이가 스며 있다. 

이들과 함께 주제전 ‘氣가 차다’(9월 25일까지)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대구미술을 살펴보는 자리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등 고서화, 수행적 과정으로 완성되는 박서보 최병소의 개념적 작업, 실재 같지만 실재가 아닌 김창열의 ‘물방울’ 시리즈 등이 어울리며 한국인의 미학을 돌아보게 한다. 또 다른 기획전으로 ‘걷기’를 예술로 승화한 영국 작가 리처드 롱의 설치작품도 선보였다. 창 밖의 녹음과 어우러진 두 개의 돌더미가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보수 성향과 저항적 반골 기질의 양면성이 공존하는 대구. 이 도시의 열린 자세는 타 지역 출신 인물을 관장으로 임명했을 때도 화제가 됐다. 김용대 초대관장은 “국·공립미술관 중 비교적 늦게 출발했지만 더 단단히 다듬어질 수 있었다”며 “지역의 역사적 궤적과 오늘을 두 축으로 대구미술의 저력을 보여주는 구심점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대구미술의 역동성
수성아트피아에서 기획한 전시는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 국제적으로 도약하려는 대구의 의욕을 보여준다.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권정호 씨와 설치작가 전수천 강익중 씨가 ‘시간’을 주제로 각기 밀도 높은 작업을 선보였다. 

권 씨는 닥나무로 만든 인골을 4000여 개 쌓아올린 설치작품으로 ‘죽음을 통한 탄생’이란 사유를 펼쳤다. 그는 “오늘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별빛은 아주 먼 과거에서 온 빛에 불과하다”며 “인골작업을 통해 죽음은 끝이자 생명의 시간이란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 씨는 신작 ‘들숨’ ‘날숨’을 공개했다. 길이 12cm의 철봉 10만 개, 음료수 빨대 7만 개를 조합한 두 개의 정육면체 큐브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상징하며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강 씨는 ‘팔공산에 뜬 달’ 등 설치작품을 내놓았다.
근대에 들어 화가 이인성 이쾌대를 배출하고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를 통해 앞서가는 미술을 포용해 한국미술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대구. 조선시대 영남문화권의 중심으로 학문과 예술의 맥을 이어온 도시는 이제 현대미술의 새로운 중심을 꿈꾸고 있다. 


▼ 세계육상 기념 잇단 미디어아트전 ▼
시청 벽을 스크린 삼고, 옛 건물도 무대로 활용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축하하기 위해 대구에선 일반적인 전시장이 아닌 색다른 공간을 무대로 국제적인 미디어아트전이 펼쳐진다. 대구시청 외벽에 국내외 미디어 작가 14명의 작품을 상영하는 ‘꿈_백야’전과 대구 중구 향촌동의 옛 상업은행 대구지점 건물을 활용한 ‘Now in Daegu 2011’전.
독립 큐레이터 양지윤 씨가 기획한 ‘Now in Daegu 2011’전은 24일부터 9월 18일까지 낡은 은행건물을 무대로 열린다. ‘예술의 이익’이란 주제 아래 김구림,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니키 리, 피필로티 리스트, 장영혜 중공업, 디르크 플라이슈만 등 23개 팀이 참여한다.


동아일보2011-8-2고미석 기자


www.donga.com/news/article/all/20110823/39727697/1


Korean Won Traveller's Cheques Lady, 2011



July 2011
Dae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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