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작<바다가 육지라면>(김지현,김나영 감독)/폐막작 <삶은 달걀>(황철민 감독), 그들이 선사한 디지털 6mm의 영화코드
이번 ‘인디포럼 2001’은 슬로건 ‘영토확장’과 함께 실험적인 두 편의 디지털을 선보였다. 지난해의 인디포럼 뿐만 아니라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나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도 개/폐막작 모두를 디지털 영화로 선보인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그 동안 디지털은 극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와 독립 애니메이션에서 빈번하게 사용되었고, 극영화에서는 필름의 우의적인 역사와 더불어 필름의 고해상도, 간지 등으로 그에 대적할 수 있는 기록매체가 없었다. 필름의 선형성과 디지털의 비선형성, 이것이 디지털이 각광을 받는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각 기록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다르고, 필름과 디지털의 환경 또한 다르다. 사회/문화적으로 디지털 메커니즘이 자리를 잡아가고, 해외 디지털 영화들의 흥행성적과 예술사적 가치가 점점 수위에오르고 있는 현재, 인디포럼이 올해 개/폐막작으로 디지털 영화를 위험하지만 감행한 것은 이러한 배경도 있었으리라. 또한 필름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매너리즘도 한몫 했다. 그러나 이번 개막작 <바다가 육지라면>과 폐막작 <삶은 달걀>은 예술사적인 평가와 작품성에 있어서 ‘신선하지만 아마추어 작품이다’라는 의견으로 양분되고 있다. ‘인디포럼 2001’의 영토확장은 내실을 다지고, 안정지향적으로 가려는 작품의 경향들을 파악하고, 그 매너리즘에 한방 먹이고 싶었던 것일까.
이 두 작품에서는 디지털 영화의 장점과 필름에서는 볼 수 없는 도전적인 실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바다가 육지라면>이 고정된 프레임으로 젊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선사했다면, <삶은 달걀>은 핸드헬드 기법으로 즉홍적인 영화로서의 실용적 가치와 예술적 의미를 되뇌이게 한다.
<바다가 육지라면>은 ‘라면’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인간의 개성과 다양성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클로즈업솨 미디엄 쇼트라는 단 두 앵글만이 쓰인다. 또한 ‘라면 끓이는 법’이라는 단순명료한 내러티브만이 설정되어 dLT으며, 감독은 배우에 대한 아무런 제어장치 없이 요리하는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촬영과 편입으로 역할의 소임을 다하고, 내러티브는 자신이 선택한 배우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한다. 여기서 주연배우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소재로 쓰인 라면이다. 그 라면을 누가 만지느냐에 따라 색깔과 맛과 향이 변한다. 이 알레고리는 좁게는 영화로, 넓게는 인간으로 환유되어 라면을 통해 자아와 주변의 사물과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 녹아든 물의 양, 스프, 양념이 라면에게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견지할 수 있게 한다. 김지현 감독의 전작 <웃음>과 <연애에 관하여>도 역시 디지털로 작업한 영화로 김지현 감독은 ‘필름의 느낌을 갖게 하려면 필름으로 찍으면 되지 굳이 디지털로 찍으면서 필름의 느낌을 살리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말은 디지털의 장점을 실험한 영화라고 보기에는 미약한 면이 많다. 디지털의 간지만 있을 뿐 영화기법은 필름의 기법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바다가 육지라면>이 전작들과 다른 것은 디지털 코드를 소화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의 장점은 디지털의 간지로 인해 필름보다 더 리얼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데 있다. 네오리얼리즘적인 특징을 차용하여 전문배우가 아닌 일반인을 출연시킴으로써 다큐멘터리적인 현장감을 돋보이게 하는 이 영화는 디지털 메커니즘에 대한 고정관념이기도 한 기동성을 이용하지 않고, 몇 개의 앵글로 전체 내러티브를 이끌고 있는 면에서 관객에게 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간다.
반면 <삶은 달결>은 전문배우를 기용한 작품으로 디지털 영화 코드를 제작 방법에서 실험한다. 단기간 안에 시나리오 없이 플롯과 내러티브를 배우와 같이 고민하는 식의 즉홍적인 연출방식을 도입한 것은 다큐멘터리의 제작방식을 차용하고 있는 듯 하다. 황철민 감독은 ‘단기간 촬영의 장점은 배우가 그 역할에 함몰되어 배우가 진실로 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감독 역시 장기간 촬영 때보다 제작 기난 동안 충전된 모든 에너지를 단기간에 쏟아 부음으로서 영화의 진실성을 맛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가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극영화의 허구성에서 보여지는 진실함과 영화 제작에 있어서 감독 스스로의 진실함이다. 단 세명의 인물로 설정된 <삶은 달걀>의 플롯은 살아있는 옛 민담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죽고싶어하는 아버지, 죽으려 하는 남자, 남자의 죽어 가는 모습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되돌리게 하려는 딸, 간단한 플롯이지만 우리의 민담이 그렇듯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뒤틀린 사회현상으로 악순환의 연쇄 고리로 이어지는 현대사회의 자화상이 폐광된 관산촌에 들어선 카지노로 보여지고, 사회 안에서 기생벌레처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버지,남자, 딸의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실험을 한다.<바다가 육지라면>이 영화의 내러티브에서 실험을 하고 잇다면, <삶은 달걀>은 영화의 제작방식에서 실험을 하고 있으며, 전자가 비전문 배우로 리얼리티를 살리려 했다면 후자는 전문배우와 함께 연출을 함으로써 극적 감정 몰입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실험적인 모험에 비해 작품의 단단함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인 면이 도출된다.
<바다가 육지라면>은 깔끔 명료하게 작품 구성을 맺고 있지만, 하나의 해프닝처럼 ‘보여주기’에 그치는 면이 있으며, <삶은 달걀>은 디지털카메라의 기능을 능가하는 촬영으로 사운드와 화면이 불완전하며, 각 인물간의 필연성이 화면 안에서 미약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배우의 연기에서 드러나는 부분보다는 각 배우들과의 네트워크의 단절에서 보여지는 인물간의 공허함이라 할 수 있다.
<바다가 육지라면>과 <삶은 달결>은 한국 극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자신만의 영상언으를 만들어 가려는 적극적인 작가의식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기존의 영상언으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영화를 만들어간다면 상투적인 영화관습을 버릴 수 없기에 ‘작가’라믐 칭호는 영화의 영육(靈肉)을 창조하는 조물주라는 의미일 것이고, 그렇기에 새로운 영화언어를 만들어가려는 이 두 작품은 <희생>(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나무 한 그루에 물을 주는 어린아이처럼 에너지의 근원이 된다. via http://igong.tistory.com/tag/바다가%20육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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