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2025년 2월 2일까지 만날 수 있는 난해한 작업들.

 

Our Gestures Define Us And Show Who We Are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지난 11월 24일부터 2025년 2월 2일까지 아티스트 듀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개인전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Paranoia Paradise>를 개최한다.

2004년부터 공동 작업을 해온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지난 20년간 아티스트로서 전방위적이라 할 만큼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함께 펼쳐왔다. 스튜디오 내에서 행하는 조각과 회화 작업은 물론이고, 대규모 공공 설치 작업과 프로젝트형 갤러리 운영, 전시기획, 출판, 커뮤니티 워크숍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활동은 쉼 없고 늘 부지런했다. 다작의 작가이기도 한 이들은(이번 전시에서도 무려 60여 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매 전시마다 각양각색의 형상들을 대거 소개한다. 이 덕분에 관객들은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시각적 정보를 늘 차고 넘칠 만큼 풍부하게 제공받는다. 허나, 이상한 점 한 가지. 그렇게 많은 정보 속에서도 우리는 늘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작품을 잘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의 작품 세계에는 모든 것이 얽혀 있다. 상투적인 것과 고급 예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산물들과 지식, 취향이 서로 얽혀져 있다. 20세기에는 극동의 나라로 여겨졌던 한국의 서울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여성과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퐁튀스 휠텐Pontus Hulten이 세운 고등조형예술학교에서 미술이론을 배운 독일 남성. 이 둘은 각자 자신만의 문화적 스토리를 가지고 파리로 유학을 왔고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라는 교차점에서 조우한 것. 여전히 서로에게 외국어인 프랑스어로 소통하며 지내는 이들의 삶에서 문화적 다양성은 곧 일상이다.

김 & 마스의 작업은 여전히 난해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이들의 목표가 곧 그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 다양한 구성 요소를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뒤엉키게 한 조합의 방식이 특이하기 때문에 작품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공간적으로 출처가 먼 것들의 이질성을 개의치 않고 이식하여 부조화를 조장하는 일, 논리나 아름다움보다는 놀라움을 추구하는 일, 때로는 희화화를 통해 불경함을 야기하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이는 보는 이들에게 흥미와 더불어 불편함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언어유희에 가까운 제목은 작품의 의도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드는데,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에서 기대하는 정제된 양식이나 공감의 정서와는 거리가 먼 혼종과 그로테스크의 세계인 것이다.

작가는 이를 “프랑켄슈타인 化(Frankensteining)”라 일컫으며, 여기저기서 수집한 사물과 아이디어를 일부씩 떼어내고 재조립해 기이한 결과를 만든다. 공원에 버려진 헬로 키티 조형물을 주워 작품으로 부활시킨 ‘반야 키티(Kitty Enlightment, 2004)’가 그 예시. 순수함의 상징물이지만 때가 탔다는 이유로 버려진 헬로 키티. 작가는 더러움을 씻기고 온기를 채워 이 헬로 키티를 회생시키고자 했다. 귀여움을 담당하느라 애초부터 갖지 못한 입도 선사해, 기쁨과 슬픔이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야누스처럼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키티는 마침내 깨달음(반야)에 도달한다.

닥터 프랑켄슈타인 코스프레가 유용하게 활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인체야말로 주체의 취약함이 드러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김 & 마스는 이번 전시에서 여러 점의 인체 해부도를 제시한다. 신체 장기로 치환된 인간은 형이하학적인 물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섹슈얼리티와 충동, 탕진 욕구 같은 내부의 힘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분출한다. 흡연과 알코올에 관한 모티브가 유난히 많은 것도 그런 방종과 탐닉의 문화에 깃든 개인의 자유와 열정, 어리석음을 흥미롭게 관찰하기 때문. ‘거품은 남근을 따른다(Foam Follows Phallus 2.0, 2024)’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모더니즘의 모토를 모방하면서 은근히 놀리는 언어유희를 즐긴다.

작품 ‘쩔었어(I nailed it, 2024)’는 미술사의 여러 요소들을 가져오면서 그것들을 인용하는데 방점을 두기보다는 작업을 완수한 본인의 성취를 강조한다. 인체 변형으로 유명한 피카소의 드로잉을 재현하고 지시하는 이 작업은 물감이나 붓이 아니라 ‘못 박기(nailing)’ 행위로 완성되는데 그 방법은 못으로 옵아트의 한 획을 그은 귄터 외커의 작업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작은 못을 촘촘히 박는 행위는 몰입을 통해 복잡한 사유를 사라지게 하는 수행의 과정이 된다. 완성한 후 내지르는 “마침내 내가 해냈어!(I nailed it)”라는 탄성은 미술사의 모든 참조물들을 뒤덮는다.

김 & 마스의 작업은 넘치는 시각적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어떤 단일한 독해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래된 사물의 수집은 ‘샘플링’에 다름없고 기억의 파편을 모으는 것이다. 각자의 개인적인 기억이나 감정이 연루되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는 자기만의 경험에 기대어 그 의미를 생성할 수밖에 없다. ‘편집증의 낙원’, 그러니까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는 정보 과잉에도 불구하고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는 시대에 대한 은유다. 노출된 수많은 사물들 사이에서도 편집증의 호사를 동경하는 작가, 그리고 작품에 대한 궁금증 앞에서 서성거릴 관객들이 만나는 예술 세상을 은유하기도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

http://www.dazedkorea.com/news/article/2882/detail.do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개인전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 2025년 2월 2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최

Global K-Art Journal & Magazine Platform

2024.12.10 이지연 | 에디터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아티스트 듀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개인전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를 내년 2월 2일까지 개최한다.


2004년 공동작업을 시작한 이후 지난 20년간 국내외 전시활동을 통해 예술의 다양성과 자유로움에 대한 인식을 확장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60점에 달하는 신작들로 그들만의 비범한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한국과 독일 태생으로 제3국인 프랑스에서 만나 공동 생활과 작업을 이어오는 작가는 혼성된 언어와 문화적 경험을 근간으로 예술의 순수성이나 위계, 규범을 무효화하는 작업세계를 펼친다.

이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물과 이미지들은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문화적 전형성을 지녔던 흥미로운 존재들인데, 애초의 용도나 맥락에서 벗어나 작가들의 손에 맡겨짐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삶의 영역에 들어선다.

일견 이질적인 오브제들의 집산으로 보이는 작품들은 예술과 삶의 간격을 없애려 한 다다이즘이나 플럭서스의 후예로서 ‘레디 메이드’의 소산이지만, 김 & 마스의 경우, 정성 어린 예술적 조정이 개입된 ‘핸드 메이드’ 조각의 면모 또한 갖춘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가 다루는 사물과 이미지들은 미술사에서부터 키치나 대중문화의 산물, 의식주와 관련된 일상용품과 남녀노소의 여가 물품에 이르기까지 한계가 없다. 그 하나하나는 대사작용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는 인체의 각부분과 부산물들처럼 위계 없이 공존한다.

전시에는 피카소나 헨리 무어의 변형된 작품과 함께 자수로 표현된 미니 마우스와 영어로 쓴 붓글씨 병풍, 코딱지 드로잉 등이 즐비하다. 풍자와 유머의 감각을 공유하지만 결코 하나의 의미로는 규정되지 않는 작가의 작품들을 사물들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무의식이나 초현실 세계로 나아가기 보다는 서늘한 현실 감각을 일깨우는 경험을 가져다 준다.

이지연은 2021년부터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에디터로 활동하였으며  2021년부터 2023년까지 samuso(현 Space for Contemporary Art)에서 전시 코디네이터로 근무한 바 있다. 

Nayoungim & Gregory Maass’s Solo Exhibition “Paranoia Paradise" on View Through February 2, 2025, at Atelier Hermès

Atelier Hermès presents a solo exhibition “Paranoia Paradise” by the artist duo Nayoungim & Gregory Maass, through February 2, 2025.
Since beginning their collaboration in 2004, the artists have spent the past two decades expanding perceptions of artistic diversity and freedom through exhibitions both in Korea and abroad. In this exhibition, they introduce their extraordinary artistic universe with 60 new works. 
Born in Korea and Germany, the duo met in a third country, France, where they have continued their shared life and creative practice. Grounded in hybrid languages and cultural experiences, their work dismantles notions of artistic purity, hierarchy, and norms. To them, the countless objects and images that exist in the world are fascinating entities once rooted in specific cultural archetypes of a particular time and place. Freed from their original purpose and context, these items enter a new realm of artistic existence under the artists’ hands. What may appear as a collection of disparate objects reflects the legacy of Dadaism and Fluxus, movements that sought to erase the boundaries between art and life through “readymades.” However, in the case of Nayoungim & Gregory Maass, their works also bear the touch of meticulous artistic adjustment, revealing elements of "handmade" sculpture. The objects and images they explore span an almost limitless range—from art history references to products of kitsch and pop culture, as well as everyday items related to food, clothing, and shelter, and leisure objects used by people of all ages. Each piece exists without hierarchy, coexisting like the parts and by-products of a metabolizing body.

The exhibition includes transformed interpretations of works by Picasso and Henry Moore, embroidered depictions of Minnie Mouse, English calligraphy screens, and even booger drawings. While their works share a sense of satire and humor, they resist being confined to a single meaning. Rather than pursuing unconscious or surreal realms through the "chance encounters" of objects, their art evokes a sharp awareness of reality, offering a refreshingly grounded experience.

https://kartnow1.mycafe24.com/ko/posts.php?co_id=1733394922

경기문화재단, ‘2019 주목할 만한 작가’ 3인 개인전 개최


▲ 김나영 그레고리마스 'best' 작품.

【수원=서울뉴스통신】 김인종 기자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강헌)은 올해 초 경기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각 예술가의 창작 활성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경기예술창작지원사업 시각예술분야 개인전 부문>에 ‘2019 주목할 만한 작가’ 4인 – 김나영 &그레고리 마스, 문소현, 한석경, 홍기원 - 을 선정하였고, 개인전 개최를 지원한다. 시각예술 창작지원프로그램은 경기도 시각 예술가를 대상으로 창작지원금과 더불어 신작 발표 전시를 지원하고,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 작가의 차년도 개인전을 후속 지원하여 작가의 예술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2019 주목할 만한 작가’ 4인은 전년도 성과발표전시에서 동시대 현대미술의 지평을 확장하며 뛰어난 성취로 향후 발전 가능성이 기대되어 최종 선정됐다.

지난 9월 홍기원 작가 1인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오는 12월 3인의 작가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문소현, 한석경-의 개인전이 경기도 대안공간 및 갤러리에서 순차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먼저 12월 4일부터 12월 28일까지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그리시 코너(Greasy Corner)》가 갤러리 다함에서 개최된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 작가는 일상적 사물, 만화 속 캐릭터, 익살스러운 말장난, 대중문화 패러디 등을 소재로 불안정한 현 시대를 위트있게 표현하면서 예술이 일상 속에 침투하도록 시도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예술 창작의 새로움과 완결성에 대한 기대를 전복시키고, 이질적인 일상적 사물과 문구, 대중적 코드를 조합하여 독특한 메시지를 암시하고, 그것을 찾아내도록 유도한다. 특히 전시 제목 ‘Greasy Corner’는 기름진 구석과 ‘아무데도 아닌 곳’이라는 뜻의 미국 지명으로 엉망과 치명적인 순간을 비유하기도 하며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서로 다른 맥락의 사물들의 조합과 충돌을 ‘불안정한 풍경의 지진대’로 일컬으며, 무형식과 무의미, 바보스러움과 추함,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내고자 한다.
-중략-

우수한 작품 창작과 발표를 위한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구축하고자 하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통해 경기도의 작가들이 한 단계 더 나아가 도약을 준비하고, 예술계 및 경기도 전역에 신선한 활력을 불러오기를 기대한다.

출처 : 서울뉴스통신(http://www.snakorea.com)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우연한 만남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 Paranoia Paradise>

글자작게글자크게인쇄목록으로

연말에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이런 전시·공연 어때요.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올해 마지막 전시로 듀오 아티스트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Gregory Maass)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한국과 독일 출신의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프랑스에서 만나 2004년부터 공동 작업을 이어 온 듀오 아티스트로, 지난 20년간 국내외 전시 활동을 통해 예술의 다양성과 자유로움에 대한 인식을 확장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60점에 달하는 신작을 통해 그들 만의 비범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이 다루는 사물과 이미지는 미술사에서부터 키치나 대중문화의 산물, 의식주와 관련한 일상용품과 남녀노소의 여가 물품에 이르기까지 한계가 없다. 
피카소나 헨리 무어의 변형된 작품과 함께 자수로 표현한 미니 마우스, 영어로 쓴 붓글씨 병풍, 코딱지 드로잉까지 풍자와 유머의 감각을 공유하지만 결코 하나의 의미로는 규정되지 않는 작품은 세상에 존재하는 문화적 전형성을 지닌 사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현실 감각을 일깨우는 새로운 예술적 삶의 경험을 선사한다.

기간 2024년 11월 22일~2025년 2월 2일
주소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45길 7,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B1F 아뜰리에 에르메스

https://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2411204587c&category=AA008&sns=y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만난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https://m.theneighbor.co.kr/neighbor/view.asp?no=10800&pType=D

PEOPLE


그레고리 마스와 김나영 작가, 이 듀오 아티스트가 보여주는 다양성과 자유로움, 그 비범한 작품 세계. 현실과 상상이 뒤얽히고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낯선 조화 속에서 기묘하고도 새로운 예술적 균형을 빚어낸다. 논리적이거나 아름답지 않은 놀라움을 받아들이면서, 그저 보이고 읽히는 것을 믿을 것. 이들이 전하는 위트와 유머에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24.12.06 

더 네이버 2024년 12월호 

성별도, 나라도, 문화적 배경도 다른 그들의 인생은 프랑스 파리에서 교차했다. 미술을 전공한 한국 여자, 철학과 미술 이론을 공부하던 독일 남자가 프랑스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 미술학교에서 만나 함께 학교를 다니며 부부의 연을 맺은 지 20여 년. 결혼 이후 조각, 회화, 설치 등의 미술 작업뿐 아니라 프로젝트형 갤러리 운영, 전시 기획, 출판 등 다양한 일을 공동으로 하게 되었다. 흔히 아티스트는 자아가 강해 같이 작업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이 둘은 서로의 고집이나 색깔이 달라 발생하는 문제가 없을 만큼 생각과 취향이 잘 맞는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해온 그들은 양평의 어느 한적한 골목 끝자락, 빨간 벽으로 이루어진 이층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작업하고 있다. 


민들레 차와 초콜릿을 빈티지한 그릇에 내온 김나영과 1층 작업 공간에서 “작업실이 아니라 실험실”이라며 웃는 그레고리 마스의 공간은 고요한 은신처 같은 평온함과 수많은 객체가 집합한 현실 세계의 조각들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보물 창고 같았다. 1층 작업실과 계단 옆 벽면을 가득 채운 다양한 분야의 책들, 가지각색의 민속 인형, 조각품과 도자기, 앤티크한 의자와 자개장… 서로 상충할 것 같은 무수한 오브제들이 조화를 이룬 공간은 이들이 어떤 것을 관찰하고 수집하는지 드러내며 유쾌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11월 21일부터 2025년 2월 2일까지, 에르메스재단의 기획으로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선보이는 전시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의 타이틀은 이들의 공간과 라이프스타일처럼 상반된 개념이 병존하는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레고리 마스는 모순적인 동어반복이 반대 개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두 개념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종교가 천국, 극락 세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파라다이스’가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지만, 우리 둘 다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보다는 정신적(spiritual)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 제목은 파라노이아와 파라다이스라는 다른 두 개념을 연결해 ‘시간은 돈이다’라는 은유(metaphor)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표현한 은유죠. 자본주의는 파라다이스이면서 디스토피아적 세계일 수도 있어요. 뒤섞이고 붕괴되면서 파라노이아(망상)가 나타납니다. 망상으로 인한 파라노이드(편집증)는 적대적이고 독단적이며 예측 불가한데요. 이런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과 의지를 억누를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에 대해 의심과 불안함을 품죠.”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설치한 작업은 60점에 달하는 신작이다. 작품 수만큼이나 시각적 과잉과 정보가 가지각색 오브제를 통해 표출된다. 그들은 하나의 물건이나 현상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기보다 특정한 시공간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모티프를 소재로 삼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다양한 소재를 어떤 식으로 작업하느냐이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견고한 것이 변화하는 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는 개개의 조각품을 변화시켜 하나의 체계성을 만들었어요. 둘 이상의 사물을 연결하고, 사물을 수집해 샘플링하고, 오버랩해서 디스플레이하는 그 모든 것이 일종의 체계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레고리 마스가 얘기한 체계성 안에서, 사물은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언뜻 위계 없이 무질서하면서도 정연하고, 하나로 규정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제한 없는 조합을 보여준다. 유리병 위에 올린 해부된 뇌와 틀니, 해부된 장기들이 X자 모양으로 군집을 이루는 콜라주, 담배꽁초를 입에 물고 타 들어가는 듯한 두상 형상의 도자기, 동양의 꽃 그림 족자에 붙인 파리채, 붓글씨로 쓴 영어 단어가 동양화 위에 놓인 병풍, 석고 피라미드 모형의 꼭대기에 비스듬히 꽂힌 스팸통… 상투적인 것들과 고급 예술,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산물, 과거와 현재, 이런 이질적인 것들이 뒤엉켜 독특한 세계를 드러낸다. 


그레고리 마스와 김나영 작가는 자신들의 작업 방식을 ‘프랑켄슈타인화(Frankenstein ing)’라고 일컫는다. “묘지에서 훔친 시체 조각을 절단하고 조립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고자 했던 미친 의사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와 유사해요. 여기저기서 수집한 사물과 아이디어를 자르거나 떼어내고 붙이고 재조립해 새롭고 낯선 결과물을 만들어내니까요. 여러 가지 사물과 현상을 수집하고 활용하되 잘 만들어진 것과 잘못 만들어진 것 사이에 동등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발전시켜요.” 다다이즘이나 플럭서스 사조에서 영향을 받은 레디메이드와 변형이 가능한 핸드메이드 면모가 공존하지만, 그들은 레디메이드나 핸드메이드에 대한 향수가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일견 불편함과 난해함을 느끼게 하는 특이한 조합 방식이지만, 각 물체가 지닌 이질성을 개의치 않고 그것들의 원래 용도나 맥락, 전형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예술적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1 ‘엑스 해부(X-Autopsy)’, 종이에 콜라주, 액자, 혼합매체, 104×90×10cm, 2024. 

‘계속 웃어라(Keep Smiling)’, 혼합매체, 109×30×30cm, 2024. 

3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 전시 전경.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장과 카페 마당 사이 중정에 ‘반야(般若) 키티(Kitty Enlightenment, 레진, 전등, 철, 바니시, 아크릴, 물감, 대리석, 170×150×258cm, 110×110×61cm, 2024)’가 설치되어 있다. 

 

 

하나의 의미로 규정되지 않는 풍자와 유머

즉흥성을 띨 듯한 사물의 조합은 사실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발견한 탐색과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레고리 마스에 의하면 그 결과물이 지닌 의미는 어떤 판단과 결정의 결과로 형성된다. “의미는 모든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달라질 수 있어요. 일상의 사소한 행위나 타인을 해롭게 하는 행동조차도 유의미하게 여겨지죠. 그 의미 때문에 결정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요. 거기엔 무한한 루프(infinite loop)가 작동합니다. ‘의미’라는 개념은 ‘시간’이라는 개념과 같이 복잡하고 다면적이에요.” 그렇게 만들어지는 그들의 작업은 다양한 인물과 현상, 사물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피카소와 헨리 무어 같은 거장 아티스트와 미술 사조부터 신화, 자연과 과학적 지식, 혹은 추억 속 대중 스타나 이국의 민속 인형, 만화 캐릭터 등에서 비롯한 방대한 모티프가 등장한다. ‘파라다이스’라는 테마로 작업한 이번 전시는 극락의 사후 세계와 아미타불, 그리스 신화 속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 로마 신화의 야누스 등 다양한 스토리를 읽어낼 수 있는 작업을 더했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반야 키티(Kitty Enlightenment)’는 야누스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공원 한구석에 버려진 대형 조형물을 가져와 작품으로 부활시켰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와 카페 마당 사이의 중정에 설치했는데, 야누스처럼 양쪽 공간에서 헬로키티의 다른 표정을 볼 수 있다. 원래 없던 눈과 입의 표정을 넣어 감정을 표현하는 키티로 회생시킨 것. “산리오 본사에선 헬로키티가 고양이가 아닌 어린 소녀라고 말합니다. 그녀에게 야누스의 얼굴을 준 거죠. 야누스(Janus)가 1월을 뜻하는 January의 기원이 되는 단어이기도 하고, 문지기라는 의미의 Janitor도 여기서 파생한 단어죠. 1월이 주는 시작과 전환의 의미, 또 전시의 처음과 끝이기도, 통로이기도 한 위치에 있는 문지기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반야 키티’라는 작품명은 야누스와 같이 두 얼굴을 갖게 된 키티가 마침내 ‘깨달음(반야)’에 이르렀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고요. 후광처럼 비추는 조명 기구를 달아 열반에 든 모습을 표현했지만, 어두운 전시장을 환하게 비추면서 전시 전체를 지지한다는 의미도 내포했죠.”


그레고리 마스와 김나영 작가의 작품이 갖는 또 하나의 재미는 유희성이 다분한 작품 제목에 있다. 사물의 속성에 근거하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가정과 기대를 뛰어넘게 하는 그들의 작품엔 한결같이 유머가 스며 있다. ‘쩔었어(I nailed it)’는 물감이나 붓이 아닌 ‘못 박기(nailing)’ 기법을 이용해 인체 변형으로 유명한 피카소의 드로잉을 2차원 회화에서 3차원 화면으로 재현한 작업이다.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귄터 위커(Gu¨nther Uecker)의 못 작업에서 차용해 작은 못들을 촘촘히 박은 후, 못을 제대로 박았다는 뜻으로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쓰는 “I nailed it!(마침내 내가 해냈어!)”라는 탄성을 요즘 어린 세대가 많이 쓰는 속어를 가져와 제목으로 붙였다. 이전에도 여러 번 선보인 ‘코딱지 드로잉(Booger Drawing)’은 ‘마르셀 프루스트 효과’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주인공이 마들렌을 먹는 순간 그 맛과 향기를 느낀 시간의 기억을 떠올린 것처럼, ‘코’가 냄새를 맡고 후각을 발동시켜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 모습을 그들만의 짓궂은 시선으로 담아낸 작업이다. 서예 시리즈인 ‘헤비멘탈(Heavy Mental)’은 버려진 병풍에 있던 한문 글씨를 떼어내고 붓글씨로 영문 단어 ‘헤비메탈’과 비슷한 발음인 ‘헤비멘탈’로 변형했다. “위트를 가미한 일종의 말장난인 거죠. 제목이 있으면 작품이 훨씬 재밌고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거든요. 둘이 하는 작업 과정도 균형감이 생기면서 더 풍부해져요. 이런 언어유희를 능숙하게 생각해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작업하는 조합의 방식을 드러내기 위해 즐겨 사용합니다. 삶엔 유머가 너무 중요하죠. 하지만 우린 웃기고 재밌는 코미디언이나 유머리스트(humorist)는 아니에요.”

 

 

 

4 ‘피라미드 유(Pyramid U)’, 유리, 석고, 혼합매체, 27×29×58cm, 2024. 

5 ‘페퍼민트 패티의 정점(PPP(Peppermint Patty Pinnacle))’, 혼합매체, 144×70×70cm, 2021~2024.

 


예상치 못한 소재를 매치해 어떤 조합을 이뤄냄으로써 전형적이지 않은 새로운 의외성을 지닌 무언가를 탁월하게 구축해내지만, 그레고리 마스와 김나영 작가에게 한정적이고 가공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김나영 작가는 작품을 통해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했다. 이들만의 유니크한 특색이지만 대중과 소통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작품이 주는 정보가 방대하고 여러 소재를 다루지만, 그 안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우리의 공통된 방식이자 태도라고 할 수 있죠. 유럽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유로센트릭한 부분도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오브제가 혼재해 있어요. 다양한 도시에서 살았던 경험뿐 아니라 인간과 역사, 지리학 등에도 관심이 많고요. 우리의 작품은 아는 만큼, 그리고 어떤 사고와 지식, 경험치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각자 다르게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조각품 하나하나의 어떤 의미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사람마다 바라보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양하고 풍부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무리 비싼 다이아몬드를 갖고 있더라도 그게 당신을 표현해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관계를 맺는 것이죠. 서로 다른 사물들 사이에 연결되는 시간적, 공간적, 또 감정적 거리와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설치를 할 때도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전체 주제 안에 있는 전시 자체가 하나의 작업이니까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낯설고 기이하게 느껴졌던 작품이 흥미롭게 읽혔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에서 수많은 물건과 현상과 현실을 보게 되고, 복잡하게 뒤얽힌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읽게 될 것이다. “어떤 관객은 작품을 보면서도 자신이 본 것을 믿지 않아요. 이것인지 저것인지, 맞는지 틀리는지, 두 가지 가운데 꼭 선택하지 않아도 됩니다. 둘 다 맞으니까요. 우리가 만든 작품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지 말고 그저 본 것을 믿고 즐기면서, 그렇게 만나기를 바랍니다.”     

 

인물  KIM NEO 작품  KIM SANG TAE ©에르메스 재단 제공

 

 

 

@yubido_tokyo



with Nakamura Masato

Dec. 2024

Art Log: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




 2004년부터 공동작업을 해 온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Gregory Maass). 

난 20년간 예술가로서 그들의 행보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마련된다.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Paranoia Paradise)>는 그간 전방위적으로 펼쳐졌기에 오히려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했던 이들의 작품세계를 더 세심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조각이나 회화 작업부터 대규모 공공 설치까지, 프로젝트형 갤러리를 운영하거나 전시를 기획하고 

출판, 커뮤니티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행보를 이어왔던 그들은 이번 전시에서 신작

60여 점을 선보인다.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여성과 독일 남성이 프랑스 파리의 에꼴 데 보자르

(Ecole des Beaux-Arts)에서 교차하며 시작되었던 그들의 만남은 곧 문화적

다양성으로 이어지며 지금의 작업을 만들어 왔다. 과거와 현재가, 동양과 서양

이, 상투적인 것과 고급 예술이 교차하며 만들어 내는 특징은 문화적 합종연횡

의 결과를 보여준다. 또한 시공간적으로 출처가 먼 것을 조합하여 부조화를 조

장하거나 때로 희화화를 통해 불경함을 초래하는 행위는 흥미와 함께 불편함이

라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혼종과 그로테스크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작가들은 여기저기서 수집한 사물과 아이디어를 일부 떼어 와 재조립해 만

드는 기이한 작업 방식을 ‘프랑켄슈타인화(Frankensteining)’와 유사한 것으

로 설명한다. 공원에 버려진 헬로키티 조형물을 주워 와 부활시킨 <반야 키티

(Kitty Enlightenment)> 또는 번아웃과 도자기의 연소 과정을 연관시키며 담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

배꽁초나 팩맨(PacMan), 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의 얼굴 등을 병치

한 <작업실에서의 힘든 하루(A rough day at the workshop)>(2022)로 완

성한 것이 그 맥락이다. 다양한 재가공의 방식을 통해 문화적 대상을 새로운 문

맥 속에 삽입하고, 이를 통해 저자성과 독창성의 개념을 깊이 있게 재검토하는

김 & 마스. ‘포스트프로덕션(post production)’의 맥락으로도 이해되는 그들

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는 2025년 2월 2일까지. 

퍼블릭 아트 Public Art, 2024년 12월호

https://m.artinpost.co.kr/product/contents.html?product_no=5163&cate_no=29&display_group=1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가 만드는 무구한 세계

 https://www.vogue.co.kr/2024/11/27/%ea%b9%80%eb%82%98%ec%98%81%ea%b3%bc-%ea%b7%b8%eb%a0%88%ea%b3%a0%eb%a6%ac-%eb%a7%88%ec%8a%a4%ea%b0%80-%eb%a7%8c%eb%93%9c%eb%8a%94-%eb%ac%b4%ea%b5%ac%ed%95%9c-%ec%84%b8%ea%b3%84/?utm_source=naver&utm_medium=partnership

조각, 회화는 물론 대규모 설치 작업을 이어온 작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일상은 질문과 은유로 가득하다. 그들의 공간에서 금기시하는 주제는 없다.




2004년부터 공동 작업을 이어온 설치미술 작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Gregory Maass)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작업실 겸 집으로 향했다. 내년 2월 2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선보이는 전시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Paranoia Paradise)>의 설치를 막 끝낸 이튿날, 인터뷰 약속을 잡은 터라 설렘과 걱정이 오갔다. 양평으로 향하는 길, 길게 펼쳐진 강은 한없이 잠잠했고 다채로운 주제, 장르, 소재를 아우르는 작가에게 던질 질문만 복잡하게 머릿속을 떠돌았다. 이윽고 도착한 집 앞, 주차하기에 앞서 김나영 작가가 2층 창문을 열더니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혹여 피곤하지는 않을지, 작업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을지 걱정한 마음 모두 기우였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두 사람은 천진했고 인터뷰 질문의 안팎을 아우르는 선문답을 던지곤 했다. 이따금 명료한 대답보다 생각해봄직한 주제, 방향을 제시하며 대화 속 리듬을 만들어냈다. 인터뷰를 끝내고 그들의 집을 둘러보는 순간, 함께 나눈 대화처럼 다양한 문화와 생각, 공존하는 예술이 눈에 들었다.

이번 전시 출품작이 60점이나 되더군요. 설치를 끝내니 홀가분한가요?

그레고리 만감이 교차하죠. 그래도 이제 손을 떠났으니 후회는 없어요.

나영 그럼에도 설치가 끝나면 남의 일인 양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업하는 동안의 감각은 남아 있는데 부가적인 생각이나 걱정은 없어요.(웃음)

럭셔리 아이템으로 가득 찬 에르메스의 지하,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일상적인 물건, 키치한 오브제 등으로 만든 작품이 들어서니 이질적이더군요. ‘이런 패러독스 자체가 예술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편집증의 파라노이아, 천국의 파라다이스가 맞닿은 전시 제목부터 모순적이더군요.

그레고리 은유적인 표현 방식이라 말하고 싶어요. 사고하고 행동하는 삶 곳곳에 은유가 녹아 있죠. 예를 들어 “시간은 금이다”라는 표현처럼요. 우리는 말장난을 참 좋아해요. 어쩌면 이런 말장난 역시 창의적 작업의 일부일 수도 있겠고요.

나영 작업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피하는 편이죠. 전시를 이끈 안소연 디렉터도 전시 소개 글에 썼는데 우리가 다룬 “다양한 모티브와 재료가 규정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방대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우리 스스로도 뭘 하는지 알기 어려워요. 삶을 규정하기 어렵듯, 우리가 하는 예술도 비슷합니다. 은유적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죠.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라는 타이틀은 서로 다른 주제의 충돌이자 연결이에요. 우리는 뜬금없는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있어요. 도예와 담배, 키치한 만화 피규어와 철골 프레임처럼 낯선 것들을 작품으로 연결하죠.

전시에는 해부학, 건강 관련 작품도 다수 있더군요. 보편적인 현대미술 작품이 정신, 감정을 다룬다고 보았기에 이색적이었습니다.

나영 양평으로 이주하며 친하게 지내는 분들의 연배가 높아졌어요. 은퇴한 70대 주민이 많은 동네거든요. 우리 또한 나이 들어가며 신체의 변화를 느끼고요. 우리가 속한 사회, 삶에서 영향을 받은 면도 있을 거라 봅니다. 이성과 감정은 어디서 기인할까요? 흔히 마음, 가슴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뇌라는 장기, 신경에서 출발해요. 신체 조직을 드러낸 작업 또한 이와 큰 차이가 없어요.

그레고리 해부학은 신체의 배열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가진 구조에 집중하잖아요. 현대에 들어 이런 구조적, 본래 지닌 신체보다 이상화된 외모가 정신에 영향을 끼친다고 봤어요. SNS 속 타인의 이미지를 보며 자신의 가슴, 머리카락, 얼굴형, 피부 톤 등에 불만을 품게 되죠. 과거 인간이 자신의 신체를 의심하지 않던 것과 대척되는 현상입니다.

나영 출산, 수유 등 한때 필수적이던 신체적 과업이 아웃소싱화되기도 했고요. 신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모티브를 연결한 작업들입니다. 수집한 사물과 아이디어를 일부 떼어내고 재조립해 작업을 완성하는 우리만의 ‘프랑켄슈타인화(Frankensteining)’ 기법을 확인할 수 있죠.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주제, 생각을 작업으로 이끌고 있죠. 프랑스, 독일, 일본, 아프리카 등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다 2017년 지금 이곳 양평에 안착했어요. 삶과 작업에도 변화가 있었을까요?

나영 2009년부터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했어요. 어느 컬렉터의 제안으로 이 동네에 자리 잡았는데 우리가 경험한 동네 중 이곳이 가장 사람이 많지 않나 싶어요. 어느 동네에 머물든 이웃과 친밀하게 지내는 편이라 특별할 건 없어요.

그레고리 높은 빌딩이 없는 것도, 산과 강이 가까운 것도 참 좋은 동네죠. 삶이 건강해져요.

나영 집에 관해서는 영향을 받는다기보다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며칠 전만 하더라도 전시 준비로 발 디딜 틈 없이 뭔가로 가득했거든요.(웃음) 우리 손으로 꾸민 공간이기에 인테리어 스타일이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삶이 묻어난 공간이에요.

이 집이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거대한 작품 같아요.

나영 골조는 창고 짓는 분이, 내부는 우리가 꾸몄어요. 높은 천장을 완성하기 위해 가장 공을 들였죠. 가구는 유럽에서 가져온 것과, 줍거나 고물상에서 구입한 것이 섞였습니다. 특히 다이닝 테이블은 160년 된 독일의 테이블 다리에 한국에서 구입한 뉴질랜드 나무 상판을 연결해 그레고리가 만들었어요.

그레고리 테이블만큼 뒤에 보이는 자개장을 짜 맞춘 듯 벽체 안쪽으로 설치하는 게 힘들었어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었죠.(웃음) 손수 채우고 가꾼 집이지만 호텔처럼 여길 때도 있어요. 집에 대해 애착을 갖기보다 언제든 전 세계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거든요.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개장이 아름다워요. 집 안에도, 작품에도 오래된 사물을 곁들였죠. 쓸모를 다한 물건에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있나요?

그레고리 사물이 생산되는 데는 필연적 이유, 필요가 뒤따르잖아요.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것들이 퇴색되곤 합니다. 시간은 붙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데 말이에요. 이것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시간의 루프를 재정의하는 거예요. 개인의 선택에 따라 물건이나 작품 수명이 늘기도 하니까요. 꽤 역설적이고 복잡한 생각이죠.

나영 “일상적 오브제를 작품에 자주 사용하나?”라는 물음을 가끔씩 받아요. 돌, 나무처럼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소재도 매력적이지만, 물건이야말로 동시대적인 물질이라고 느껴요. 과거 한국에서 소나무가 많으니 그것으로 집을 지어왔듯 말이에요. 특별히 뜻을 두었다기보다 자연스러운 선택이자 행동이에요.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가는 개방적인 태도군요.

나영 선구적 메시지, 큰 사명감과는 거리가 먼 작업을 합니다.(웃음) 거대한 메타포, 정형화된 작업 방식을 취하지 않아요. 작업할 때조차 협업이라기보다 각자 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도맡아 진행합니다. 이를테면 전시작 중 수놓기는 제가, 서예는 그레고리가 담당하는 식이죠. 어떤 작업은 한 사람이 쭉 이끌고 갈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럼 한 사람의 결과물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같이 나눈 대화, 질문, 생각이 그 속에 녹아 있거든요.

두 분의 작업과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이곳에서는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나요?

나영 둘 다 종일 작업을 해요. 미술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작품을 수집하거나 좋아하는 도록을 보기도 하고요.

그레고리 작업실에 마련한 거대한 책장에서 소설책을 꺼내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하죠.

나영 집 자체를 즐기는 시간도 가져요. 어려서부터 ‘집’이라는 공간을 좋아해서 친구네 집에도 자주 놀러 갔죠. 집집마다 녹아 있는 문화, 생활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반려묘 세 마리와 나른한 시간을 보내는 순간도 즐깁니다.

연말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나영 전시 준비로 너무 바빴기에 숨을 돌려야겠죠. 그런데 큰 계획을 세우지 않으니 글쎄요… 그저 매일 작업을 하겠죠.

그레고리 We don’t have Sundays, holidays!(웃음) (VL)

피처 디렉터
김나랑 
2024.11.27 Vogue Korea
사진
박나희
유승현 (프리랜스 에디터)


에르메스 매장 한가운데 '빛나는 헬로키티 불상’이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개인전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 내년 2월 2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세계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 쇼룸이 모인 도산대로엔 터줏대감처럼 에르메스 매장이 골목 초입을 지키고 있다. 올 겨울, '럭셔리의 상징'과도 같은 에르메스의 서울 매장 한가운데엔 '헬로키티 동상'이 떡하니 놓였다.

원래대로였다면 작고 귀여워야 할 헬로키티지만, 이 키티는 성인 남성이 눈을 들어 올려다보아야 할 만큼 거대하다. 하지만 이 '키티 동상'이 건물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는 따로 있다. 동상에 금빛 후광이 비치기 때문이다.
에르메스 매장 가운데 후광 키티를 세운 작가는 아티스트 듀오로 활동하는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 이들이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를 펼치고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인 김나영과 독일인인 그레고리 마스는 오랜 작업 동료이자, 같이 삶을 꾸려가는 부부다. 김나영이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학교 유학 시절 같은 반이었던 마스를 만나 인연을 맺은 뒤 2004년 결혼했다. 올해 벌써 20년째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아티스트 듀오 김나영(왼쪽)과 그레고리 마스.  / 사진. ⓒ김상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아티스트 듀오 김나영(왼쪽)과 그레고리 마스. / 사진. ⓒ김상태
부부는 아티스트 동료로, 또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세계를 돌며 전시를 열고 작품을 만들었다. 일본, 필리핀, 독일에서부터 아프리카까지 '노마드'처럼 떠돌며 살아왔다. 세계 여행을 펼치던 이들은 2019년 한국 땅에 정착했다. 양평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한 뒤 그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작품을 만들고 있다.

부부는 항상 실용성과 효율성에 관심이 많았다. 버려진 물건들을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킨 작업을 펼치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서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잡동사니들을 구해다 작품을 만들었다. '키티 동상'도 이렇게 탄생했다.

동네 공원에 버려진 대형 키티 조형물을 발견한 부부는 이 폐기물을 동상으로 변신시켰다. '세계인이 사랑하고 올해 탄생 50주년을 맞은 헬로키티를 색다른 동상으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고양이 본체 주변에는 황금색 빛을 내는 전구들이 둘러싸고 있다. 마치 키티가 후광을 입은 모습을 표현했다. 작품의 이름도 '반야(般若) 키티'로 지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문을 지키던 두 얼굴의 신 '야누스'처럼 부부의 키티도 2가지 얼굴을 가졌다. 앞에서 볼 땐 울고 있지만, 뒤쪽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이들은 키티 동상이 마치 신화 속 야누스와 같이 자신의 전시장을 지키는 역할을 해 준다고 생각하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
고양이 몸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통과 버려짐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실제 이들은 버려진 조형물에 어떤 가공도 하지 않았다. 오직 때가 탄 부분만 씻긴 뒤 부항을 떠 주듯 전구를 붙인 게 전부다. 버려진 물건들을 가공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다.

이처럼 김나영과 마스는 본래의 물건이 가진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잡동사니들을 작품으로 만들 때도 일정한 모양으로 깎고 만지는 대신 뒤죽박죽 배치한다. 자칫 작품들이 산만한 듯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부부가 '의도된 산만함'을 택한 데는 오랜 기간 이어온 신념이 바탕이 됐다. “완벽한 것을 만들기는 쉽지만 순수함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A Rough Day at the Workshop 1~5' (2024). / 사진. ⓒ김상태, 제공. 에르메스 재단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A Rough Day at the Workshop 1~5' (2024). / 사진. ⓒ김상태, 제공. 에르메스 재단
부부는 오로지 완벽함을 위해 이질적인 것들을 배제해 온 인간의 역사를 작품을 통해 꼬집는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김나영과 마스는 이 작업을 '프랑켄슈타인화'라고 이야기했다. 메리 셸던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죽은 시체를 모아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듯, 이들도 일상 곳곳서 만난 죽은 사물을 모아 새 생명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일까지 이어진다.

한국경제 최지희 기자 2024.11.25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11229063i

"파리서 만난 서울 여자-독일 남자"…김나영&그레고리 마스展

 2004년부터 함께 작업, 작품 뒤엉키게 조합한 방식 그 난해함

서울 강남 아틀리에 에르메스서 2025년 2월 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