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5.08.22.(금) - 10.26.(일), 화-일, 오전 11시 - 오후 7시
▪️장소: 아르코미술관 제 1, 2 전시실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correspondence 〈서신교환〉
《안티-셀프: 나에 반하여》에 배치된〈서신교환〉은 전시 기획팀과 5명의 참여 작가가 주고받은 편지 형식의 대화입니다. 이 서신에는 질문과 사념, 응답이 담겨있습니다.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에는 작품 너머의 이야기, 새로운 연작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고민, ‘그때’의 미술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시대의 관성을 따르기보다, 미술 현장의 유행과 쇠퇴의 과정 사이에서 자신의 방향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개척해 나가는 항해의 여정, 그리고 잠시 머물렀던 순간들을 작가의 언어로 들을 수 있습니다.
📬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작가별 서신을 작품 관람과 함께 자유롭게 펼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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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𝙲𝚘𝚛𝚛𝚎𝚜𝚙𝚘𝚗𝚍𝚎𝚗𝚌𝚎
𝙲𝚘𝚛𝚛𝚎𝚜𝚙𝚘𝚗𝚍𝚎𝚗𝚌𝚎 is a dialogue in the form of letters exchanged between the curatorial team and five artists. These letters contain questions, reflections, and responses.
Through them, we can glimpse the stories behind the works, the contemplations in the process of moving toward new series, and the artists' thoughts on the art of “that moment.” Rather than following the inertia of their time, we can hear in the artists' own words their journey of navigation—charting their own unique directions amidst the rise and decline of trends in the art world—and the moments where they briefly anchored along the way.
📬 Feel free to unfold and read the artists' letters placed throughout the exhibition space while viewing the artworks.
첫 번째 편지
발신인: 노해나
2025년 5월 27일
안녕하세요,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작가님,
서신의 시작을 출판에 대한 이야기로 열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업과 연결되는 그레고리 마스의 글을 담은 책을 함께 선보입니다.
1999년 《99’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 믹서 & 쥬서》(미술회관, 현 아르코미술관)에서 김나영 작가님은 소규모의 책 『전설』을 선보였습니다. 이 책에는 작가의 동료들이 참여했는데요. 김순기, 이불, 김범, 나카무라 마사토, 그레고리 마스 작가님 등이 싱거운 농담 같은 일화, 우연으로 이루어진 픽션을 공유했고,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기획자는 이 책에 담긴 일화가 미술가의 작업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미술가와 미술 작품 사이에 주목하면서 “미술에 대한 미술이라는 구조” 를 가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사무실 공간에 놓일 법한 책상과 의자에 앉아 관람객이 책을 보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출판물이 설치되었고요.
“출판 행위, 전시 행위, 관람자의 열람 행위, 판매 행위” 로 이루어진 이 작업은 동료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 이야기가 담긴 출판물을 관람객이 보는 행위까지 이어지며 미술가와 작업, 이를 유통하는 매체, 관람객과의 관계 전반을 인지하게 합니다.
특히 《믹서 & 쥬서》에 참여한 작가들은 예술가로서의 입장, 제도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개입을 다룬 작업들을 선보이며 2000년대 시각예술의 다양한 시각언어를 드러냈습니다.
전시에 참여한 콜렉티브 ‘MAFI’는 마피라는 가상의 회사를 홍보하는 설치와 퍼포먼스를, 임민욱 & 프레데릭 미숑은 전시장의 틈새를 활용하거나 “문화의 세기가 오고 있다”라는 사인물을 외부에 걸어 개입으로서의 미술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작가들은 미술을 둘러싼 메커니즘과 제도를 비판적으로 자각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태도와 생각을 보여주었고, 이 전시는 그러한 면모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미술 시스템에 대한 인지와 그 유통, 순환 구조를 지시하는 작업은 이후 작가님께서 가상의 전시 공간이자 플랫폼으로 만든 ‘킴킴갤러리’에서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님의 책 『다이어리아: 원인, 증상과 치료』(2025)는 전시장에 놓여 작품과 작품 사이의 컨텍스트와 관계성을 지시하게 되는데요. 이 책을 협력 출판하는 나선프레스의 이한범 편집자는 예술가가 직접 쓴 예술론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작가님께서 출판한 『Unfucking Real 쓰바 레알』(2012), 『It’s nice to be nice, try it!』(2008), 『Warped Flow Gadget』(2007)은 전시 기록을 위한 도록이라기보다 독립적인 아티스트 출판물로 보이는데요. 이를테면, 『It’s nice to be nice, try it!』는 작업 개념의 키워드와 작품 목록이 A-Z까지 인덱스로 분류되어 있는데요. 이는 책의 내용을 안내하는 일반적인 목차의 역할보다는 알파벳 순서가 만들어내는 개념의 우연한 분류를 통해 파편화 효과를 연출하고, 또 작품 이미지의 순서를 인덱스 기준으로 뒤섞어 기존의 책 패러다임을 따르지 않게 하는 분산적인 책의 경험을 이끄는 것 같아요.
다시 말해 작가님은 책을 하나의 매체로서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출판이라는 매체는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작업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 걸까요?
유통과 배포가 가능한 시스템에 대한 관심에서 출판에 주목하는 것일 수도, 혹은 책이라는 고정된 형식을 변주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새로운 형식의 가능성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일시적인 설치와 프로젝트들을 기록하기 위한 매체가 현실적으로 필요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이 문제는 비단 출판물에 한정하지 않고 작업 전반의 방법론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지만요.
노해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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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편지
발신인: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2025년 6월 7일
그레고리 마스:
입에 발린 말을 안 하기로 악명 높은 사람이 당신의 친구, 바로 접니다.
그런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자기 회귀적 선언이네요. 열 개의 까다로운 질문 안에 숨겨진 스무 개의 질문을 마주한 당신의 친구[제]가 혼돈을 질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마치 전지전능한 하나님(보통 신이라고들 하죠)처럼 말이죠.
킴킴갤러리는 가치 있고 유망한 주제입니다.
이 갤러리는 가짜도 아니고 환상도 아닙니다. 상상 속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건 진짜고, 현실의 95%가 그렇습니다.
이것은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시스템이 뭐죠? 시스템의 유일한 목적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보아왔듯, 시스템의 실질적 목적이 공식적 목적과 상충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시스템이 어떻게 실행 가능한 거죠?’라고 물으신다면, 오직 그것의 하위 시스템 덕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예술가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붕괴 상태에 있는 것이죠).
단순한 시스템에는 다섯 가지 구성 요소가 있습니다.
운영: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당신의 친구[제]가 만든 개념입니다. 더글러시즘 참고).
조직: 매끄러운 운영을 위한 규칙들(자기 파괴에 대응하는 것. 참고: 보험이나 내재적 결함).
전달: 자원과 연결된 관리, 물 한 잔 혹은 람보르기니일 수도, 아니면 둘 다.
개발: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를 이해하기. 현실 검증 참고.
정책: 위의 것들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균형을 잡는 것. 자세히 말하자면, 전달과 개발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는 일입니다.
맞습니다. 여기에도 자기 회귀가 있습니다. 이상으로 당신의 친구[제]가 드린 간단한 설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요?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만들어진 것입니다.
기억(자전적이라고 해두죠)은 동화와 비슷한 재구성의 산물입니다.
데이터와 구분되는 정보, 그리고 이 정보와도 또 다른 오늘날의 지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어쩌면 그보다 더 빠르게 변화합니다. (아니요, 사실 생각은 빛보다 빠릅니다.) 양자얽힘을 보세요. (사실 전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195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시작된) 인터넷과 전자 컴퓨터 이전 시대의 책들은 다릅니다. 이들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이 책들 없이는 아마도 금방 쪼그라들어 죽어버릴 겁니다. 미라처럼 변하고 먼지가 되어버리겠죠. 우리는 수많은 책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우리 작업실은 알고 보면 아테나 신전과도 같습니다. 미닫이문 뒤에는 당신의 친구[제]가 절대로 모두 다 읽을 수 없을 수천 권의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농담이에요. 거의 다 읽었어요. 그리고 이 책들이 모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시스템인 의식에 관한 어려운 질문에 비하면 이것은 꽤 쉬웠네요.
여기서 시스템이란 복잡 적응시스템(CAS: complex adaptive system)을 말합니다.
그게 뭐냐고요? 예를 들면, 이것은 살아있는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박테리아는 당연히/나름의 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 정도가 작긴 하지만요.
컴퓨터마저도 어느 정도는 의식을 가졌으니까요. 이건 뭐 정신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박테리아의 의식이란, 박테리아로서 존재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돌의 경우는 다릅니다. 돌은 미생명체입니다. (그건 그렇고, ‘생명’은 아직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물학은 일종의 유사과학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복잡 적응시스템이 죽은 물질, 대부분이 H2O로 이루어진 원자 덩어리에서 생성되는 건가요? 인간의 정신은 신체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닙니다) 저는 일원론적 경향을 담고 있는 굉장한 혼합체를 관찰합니다. 생각(느낌과 감정도 마찬가지로 생각/정신 활동으로 고려합니다.)이 우리 몸의 전기화학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함께 존재하는 것을 이해함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법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예술 작품 안에 내재해 있거나, 예술 작품을 구성하거나, 이를 통해 전달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현실 검증이라 부르죠.
당신이 사랑에 빠지면 첫 번째로 고장 나는 것이 현실 검증 능력인데,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은—여기서 말하는 행복이란 단지 만족이나 대양적 감정도 아니고, 권력이나 섹스, 자원, 안전, 건강, 젊음도 아닙니다. 바로 무(無)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네, 두 번), 저 위에 언급한 것들은 사실상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죠.)
야망(대부분 건강하지 못한 상상)이나 성공(이익을 얻기 위한 사회적 발명)은 잊으세요.
동기를 살펴봅시다.
예술의 기능 중 하나는 무(無)에 몰입하는 행위를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걱정마세요. 저는 영화에서 최신 맥 컴퓨터를 부수거나, 갱이 마지막 총알을 쏘고 총을 던져버릴 때마다 여전히 괴롭습니다. 보통 데저트이글 매그넘. 44권총은 한 자루에 2,500에서 4,000달러나 하는걸요. 이런 건 정말 비싸다고요! 아이고, 아니요! 당신의 친구[저]는 총기 규제에 찬성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총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킴킴갤러리는 요셉 보이스가 만들어낸 신조어 ‘확장된 예술 개념ᄂ’(Erweiterter Kunstbegriffn)과
그 맥을 같이합니다. 우리는 보이스의 추종자는 아니지만(우리 경험상, 추종자들은 보통 연로하고 신체 위생이 그리 좋지 않던데요.), 그의 대담성은 존경합니다. 신조어들의 표기가 따로 없으므로 ‘ᄂ’(n)을 덧붙여서 제가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질방구ᄂ(queefn), 쿼크스ᄂ(quarksn), 프리스비교ᄂ(Frisbeeterianismn)...
위의 이야기가 차게 들렸다면, 다른 차원에서는 매우 따뜻한 의미가 있다는 걸 확신하셔도 됩니다.
임마누엘 칸트(적절한 이름입니다.)나 석가모니가 말한 보편적 전제, 즉 “당신이 엿 먹고 싶은 방식으로 남을 엿 먹여라”가 참 진리였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몇 없겠죠. 전멸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는 훨씬 더 친절한 사람들입니다.
전설은 전설적입니다.
이제 김나영에게 차례를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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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s truly is infamously famous for not sugarcoating words, which is an absurd self-regressive statement. Confronted with 20 hidden questions rolled into 10 tricky ones, yours truly will turn chaos into order, almost like the lord almighty (commonly referred to as god).
Kim Kim Gallery is a promising subject of merit: The gallery is not unreal, it’s not a fantasy, not imaginary. There are very many invisible, untouchable things, which are very real, like roughly
95 % of reality. It is a system and what is a system? The only purpose of a system is what it does, hitherto referring to the commonly observed phenomenon that the de facto purpose of a system is often at odds with its official purpose. So how is this system viable? Only by virtue of its sub-systems themselves being viable.
For example the artists. (So it’s in a constant state of collapse.)
A simple system has 5 components: Operations: activities that ameliorate the environment (invented by yours truly, see Douglasism). Coordination: protocols that arrange operations smoothly. (against self-destruction, see: insurance, inherent vice)
Delivery: management associated with resources, be it a glass of water or a Lamborghini, or both.
Development: planning for the future, understanding the present.
See reality-testing.
Policy: Balancing the above, so that the above works smoothly
together. To be precise: decision making between delivery and development.
Yes, of course there is self-regression in it. Yours truly kept it simple.
How did we get here?
The past does not exist anymore, it’s a construction, a memory (let’s say autobiographical) is a re-construction, akin to a fairy tale.
Today’s knowledge, which is different from information, which is different from data, changes in a blink of an eye or faster. (No, counter-intuitively thoughts may be faster than light, see: entanglement (yours truly is totally not sure about this). Pre-internet/electronic computer age (beginning somewhere between 1950s and 90s) books are different, they don’t change.
Yours truly would shrivel and die instantly without them, mummify and turn into dust. We are physically surrounding ourselves with them.
Our studio is an Atheneum in disguise, behind sliding wooden panels it hosts thousands of books, which yours truly will never be able to read. (that’s a lie I read most of them, not all worth reading)
That was easy enough, compared to the hard problem of consciousness, which is also a system. In this case a CAS, complex adaptive system.
So what is it? It’s like being a living human being, for example.
Bacteria of course have consciousness, but less so.
Even a computer has consciousness to a certain degree, no doubt about it, psychologically and scientifically.
Consciousness of a bacteria is what it is like to be a bacteria, for stones that
don’t work, a stone is dead matter. (Bye the bye “life” has no definition yet, so biology is a pseudo-science.) So how does such a CAS arise from dead physical matter, a big bunch of atoms, mostly H2O?
The human mind is not separate from the body, (that’s not entirely correct), yours truly observes a wild amalgam of monist tendencies.
It is very important to understand that thought,
(feelings and emotions are also to be considered thoughts/mentations) does not derive from electro-chemical processes in our body, but coincide.
We know very well how to distinguish reality from the imaginary.
It’s built into/is composed/transferred through many of our artworks, in psychology this method is called reality-testing.
When you fall in love, the first thing which goes over-board is your reality-testing, that’s normal. The only way to be happy, I don’t mean satisfied, xor having an oceanic feeling xor, have power, sex, supply xor safety xor even being healthy, xor young, is to indulge in nothingness, because because (yes, twice) the above is meaningless of course. (as in not important) Forget ambition (mostly unhealthily imaginary), success (a social invention for gain).
Let’s look at motivation.
One function of art is to make nothingnessing more interesting than art.
Don’t worry I still suffer physically when the latest mac computer is broken in a movie, or gangsters throw guns away after firing their last bullet.
A regular Desert Eagle magnum. 44 goes for 2500 to 4000$US a pop, that stuff is expensive! Oi! No, yours truly is pro-fire arms regulations, but they are so much fun and of deadly beauty at the same time.
Kim Kim Gallery is a part of the Erweiterter Kunstbegriffn, a neologism coined by Joseph Beuys, of whom we are no acolytes, those are mainly quite advanced in age and of bad physical hygiene to our experience, but admire his true balls of brass. There are no signs for neologisms to my knowledge so I introduce/coin/ n.
Like for queefn, quarksn, Frisbeeterianismn...
If the above seems cold to you, rest assured counter-intuitively
it’s quite warmhearted on another level. If Immanuel Kant’s (rightfully named so) and Gautama Buddha’s ubiquitous premise were of universal truth: “‘Screw un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screw unto you,’” the very few would survive, as in nobody.
We are much friendlier than that.
Legends are legendary: I pass the torch on to Nayoung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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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
지난번 편지에서 『전설』을 언급하셔서, 출판 무렵인 1999년경에 쓴 글 관련 링크를 드립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https://nayoungim-maass.blogspot.com/2009/02/legends.html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의사소통의 수공업적인 형태이다.
설명이나 정보처럼 진실을 전하려는 것이 아닌 대신, 정보가 갖지 않는 풍부함과 서스펜스를 동반한다.
사람들 간에 이야기가 반복되고 기억되면서 전하는 사람의 흔적을 남기지만,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화자의 감정이 배제된 정결하고 간결하게 짜인 집중된 형식을 가지게 된다.
이야기는 스스로를 완전히 소모하지 않고, 자신이 지닌 힘을 그대로 유지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다시 펼칠 수 있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계속해 반복하는 기술을 뜻하며, 듣고 반복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짜이는 진행형이다.
전설은 미술가들에 관한 이야기의 모음이다.
이 이야기들의 특정한 모양, 구조, 방법은 이야기의 주인공인 각 미술가의 행동, 구조 그리고 인지 가능한 시스템 사이에 유사성을 보인다. 그들의 미술과 모양, 구조, 형식이 흡사한 것을 발견하는데, 이야기와 작품에서 발견되는 그 유사성이 가지는 특이성-미술적 형식의 발견에서 전설이 유래한다. 전설에서는 각 이야기가 독립된 것이 아니라 미술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미술가의 개인적 특성(창의성), 관심의 지속과 발전을 통해 작품으로 실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요소로, 미술가와 그들의 미술 사이에 특별한 공간을 형성하고 위치하면서 미술과 미술가라는 관습적 단위들에 의해서는 분명히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것이다.
전설은 미술가와 그의 미술을 묘사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두지 않는다.
미술가 개인의 특이한 작업 방법과 실천의 기능 조건을 찾으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미술가들의 이름은 아무래도 좋으면서도 구속력을 가진다.
미술가의 이름은 애매모호하게 기능하며 각 이야기를 구별하고 존재의 의도와 방법, 형식을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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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편지
발신인: 이채원
2025년 6월 16일
안녕하세요,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작가님!
서신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얽혀 회신하는데 며칠 끙끙거렸어요.
아마도 서신을 통해 저에게 ‘사이코빌딩’이 작동하는 게 아닐까요?
서신과 마찬가지로 작가님의 작업들 역시 처음엔 자유롭고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굉장히 세부적인 작동 원리가 치밀하게 조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시스템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고, 끊임없이 붕괴 상태에 있다는 자기 회귀적 구조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배타적 논리합”(XOR)이 궁극적으로는 “무(無)에 빠져드는 것”이라 말씀해 주셔서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집중하고 싶은 점은 작가님께서 비물질적 사유를 프랑켄슈타인화를 통해 물질화시키는 과정입니다.
작가님께서는 “본질적으로/근본적으로 한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그들의 기억이다.
기억은 성향부터 기술, 습관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지나며 발달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는 삶이라는 캔버스 위에 남은 흔적처럼 마음속에 저장된 경험과 행동이다.” 라고 언급하며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인습에 의지함 없이 궁극은 드러나지 않는다.” 는 나가르주나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반복 행위를 통해 몸에 익히는 것, 익숙해진 것으로부터 나오는 사유들, 그것이 또다시 몸을 통해 이미지나 텍스트로 순환하고 환원되는 과정을 말씀하신 것 같아요.
이것은 작가님이 지난 편지에서 “인간의 마음은 몸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라는 일원론적 경향을 이야기하신 것과 동일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생각이 우리 몸의 전기화학적 과정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일치한다는 작가님의 관점에서 보면, 사유는 결국 몸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작가님의 작업이 단순한 개념 놀이가 아닌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실천으로 나타나는 것이겠죠.
이런 맥락에서 “자기-상태” 개념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은 나를 교차하는 관계망들의 상황 속에서 나의 수많은 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자기-상태가 기능하려면 서사적 맥락에서의 자기-진술이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이 내러티브라는게 어떻게 획득 가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특히 요즘의 시간성은 “판타지” 나 “야망” 같은 방어 메커니즘을 자기-상태로 교묘히 위장해서,
어떤 구멍을 발견하거나 구멍을 만들어낼 여지를 주지 않는 것 같거든요.
현재의 미디어 환경과 사회적 조건들이 만들어내는 가속화된 시간성 속에서, 진정한 “오리피싱”(구멍내기)이 가능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먼저 구멍이 날 수 있는 견고한 표면이 있어야 하는데, 모든 것이 이미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상태에서는 구멍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요?
작가님께서 스튜디오를 “위장된 아테네움”으로 만들어 “변하지 않는” 책들로 자신을 물리적으로 둘러싸는 행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디지털 정보의 바다에서 물질적 고정성을 확보함으로써 진정한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겠죠. 또 “푸르스트 효과”처럼 냄새를 통해 편도체와 연결된 감정과 기억의 회로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코딱지 드로잉〉(2025) 같은 작업의 맥락에서도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라는 후각적 경험이 시각적 이미지로 번역되면서 몸의 기억이 새로운 형태의 서술적 맥락을 획득하는 과정은, 단순한 감각의 전이가 아니라 자기-상태들이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소통하고 연결되는 “사이코빌딩”의 구체적 사례가 아닐까요?
작가님의 작업에서 출판이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물질적 형태로 고정됨으로써 가변적 디지털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종류의 반복과 참조가 가능해지는 것, 그리고 그 반복을 통해 새로운 습관과 기억이 몸에 각인되고 다시 새로운 자기-상태를 생성해 내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말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어떻게 진정한 ‘무화’로 향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질적 실천을 통해 비물질적 사유를 구현하면서도,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무의 경험이 가능한 것일까요? 혹은 그 물질화 과정 자체가 바로 무화로 향하는 길인 것일까요?
어쩌다 보니 긴 편지가 되었네요.
작가님의 사유와 실천이 만들어내는 복잡하고도 정교한 우주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채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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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편지
발신인: 노해나
2025년 6월 29일
안녕하세요, 김나영, 그레고리 마스 작가님,
일본에는 잘 도착하셨는지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 반 진공상태에서 이 서신을 씁니다.
여러 시차로 인해 이번 서신은 이채원 님이 언급했던 내용에 첨언하는 방식이 되겠네요.
1.
『다이어리아: 원인, 증상과 치료』(2025)를 읽으면서, 파편적이고 여러 지식의 경계를 오가는 상태들을 머릿속에서 다시 연결해 봅니다.
이 책은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가 추구하는 다양한 상태와 관계망에 의해 연결된 제3의 상태에 대해 정의하려는 열망이 보입니다. 그레고리 마스 작가님이 정의하는 상태에서 아직 발견되지 못한 용어들 “나설예”(TBEOL, 나중에 설명 예정인), “IYI”(당신이 관심 있다면/지적인 그러나 멍청한)이 붙어있듯 아직 미발견된 것이지요. 지식과 지식 사이에서 새롭게 해명되고 명명되어야 하는 세계는 그야말로 발명되는 것이겠죠. 문득 도나 헤러웨이가 『겸손한 목격자』(2007)에서 기술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지식과 설화, 사변을 오가는 활동이 떠올랐습니다.
과학 연구에는 기입되지 않으나 실제 행위자로 활동하는 존재, 물질화된 기술과학을 설명하는 주체들로 여성인간, 앙코마우스 등을 기술과학의 비유로 재등재하고 기술과학을 재정의하는 접속점으로 활용하는데요. 『다이어리아: 원인, 증상과 치료』에서 학문과 지식의 경계를 넘어 상상과 실천을 발생시키고, 그것이 결국 물질과 사물로 순환하는 세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은 형성 중인 하나의 독자적 세계로 보이네요.
2.
‘살아있는 인간’은 자기 성찰 능력을 지닌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피드백 루프로 생성되는 결정들은 우리 인식의 의미를 형성하는 동시에 현재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는 것은 작가님들의 작업 방법론을 떠올리게 하는 비유입니다. “우리 몸이 더 이상 우리에게 필수적이지 않은 패턴의 일부”이며, “많은 신체적 작업들이 외부로 위탁되었다.”는 포스트휴먼적인 성찰과 함께 “피드백 루프”가 단지 우리 신체 내부만의 메타볼리즘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결합과 관계에 의한 순환과 생성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작가님들이 다루는 매체인 ‘조각’과 ‘사물’은 고정되지 않고 외부적인 것과 지속해서 관계를 맺고 피드백 루프 되면서 의미가 생성되기도 소멸되기도 하는 아이디어를 발견하게 합니다.
작업의 방법론을 지시하는 프랑켄슈타이닝, 그리고 사이코빌딩이 “관람자의 가정이나 기대에 도전하기를 바라는 것”, “우리는 관계를 만든다. 관계는 서로 다른 사물들(죽은 물건들), 개념들 혹은 개체들이 연결되고/접착되고/못질되고/겹치고/얽히고/중첩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으로서 존재한다. 우리가 살고 숨 쉬는 공간은 사물들의 사이이다.” 라고 말하듯이, 한 개체를 벗어나 관계, 간 사이에 번영하는 것이 이 방법론 의 창조의원천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형식은 원본의 것을 참조하지만, 그 기원의 정체성은 외부와의 관계성에 의해 다른 의미로, 끊임없이 변형됩니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작업에서 하나의 사물이 다른 것과 결합하면 그 사물은 더 이상 그 사물로서 존재할 수 없고 전혀 다른 맥락에 놓여 다른 의미의 개체가 되듯이요.
그래서 이것을 시시콜콜 해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분명 새로운 상태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분석, 해석하는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 만들기가 될 수도 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보다는 관계성이 만들어지는 방법론에 주목하기로 해봅니다.
그레고리 마스 작가님이 ‘무’, ‘공’, ‘허’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여기서 연결해 볼까 합니다.
“극히 드문 생존자인 빅터 프랑클은 살아 있는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내러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러티브는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라고 언급했듯, 인간은 늘 의미를 찾고 덧붙이려 합니다.
의미가 없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여기고, 사회에서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존재는 유령과 다름없죠. 그러므로 의미화는 생존의 방식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이를 자아 형성과 연결해 말하자면, “자아, 개인, 그리고 성격 이 세 가지 개념은 허공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자아는 홀로 정의될 수 없습니다. “자기 상태는 재현이며, 말하자면 환영의 환영이다. 관계가 당신을 정의한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정의한다.” 라고 언급하셨듯, 의미 체계에 들어가는 ‘나’는 관계의 방식들에 의해 무의미의 체계를 이어주는 창조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의미화된 내러티브는 포착할 수 없는 자아를 정의하는 일종의 “판타지”일 수 있으나, 이러한 연결 방식들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자아를 설명하는 것이겠습니다. 이를 작업의 방법론에 연결해 보면, “접착되고/못질되고/겹치고/얽히고/중첩되”는 것은 사물과 물체 간의 연결을 통해 의미 체계로 들어오게 하고, 이로써 제3의 새로운 사물로 도약하는 관계 방식, 정의 방식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면에서 “프랑켄슈타인화”, “사이코 빌딩”은 태도이자 관점, 그 전부이기도 한 것 같군요!
이 방법론에 의해 계속해서 생성되는 사물들은 절대적으로 고정된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에 맞게 자신의 모습을 변경할 수도 있고, “오늘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사람일 거야.” 같은 상태인 것이겠지요.
스스로를 다른 상태로 만들어 나가는 이번 전시의 주제 ‘나에 반하여’와 사이코 빌딩 개념이 맞닿는 지점에서 조금 더 전개할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3.
신체의 구멍에서부터 헨리 무어식 오리피싱, 블랙홀, 무의 개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번 전시에서 〈수석〉(2025)을 보여주기로 한 것과 연관이 있겠지요.
이 작업은 모양이 훌륭한 돌을 수집하는 전형적인 장식품 수집 취향과 “헨리 무어풍 드림 스톤, 오리피싱” 이라는 하이브리드적 결합 상태를 보여줍니다.
조각에서 보이드를 내는 것은 조각에 공간성을 부여하고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 역할을 합니다. 작가님이 지적하셨듯이 보이드/구멍은 단단한 물체의 형태에 따라 생기거나 정의되는 단순 원리는 아니지요.
(그레고리 마스는 구멍 자체는 단단한 덩어리만큼 많은 형태-의미를 가질 수 있다라고 말한 헨리 무어의 언급을 에둘러 탓하고 있습니다) 보이드/구멍은 그 자체로 포착할 수 없는 물체의 공백이기도 합니다.
사물에 낸 형태적 구멍이 아니라 해명되지 않는 존재 자체의 구멍 없는 상태에 가까운 것이기도요.
신체의 구멍은 신체의 내부이면서 외부인, 경계가 모호한 기관이지요.
“사람들은 구멍을 실체적이고 셀 수 있는 물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것들은 다른 물체 안에 무언가가 없는 상태” 이기도 합니다. 이 구멍의 상태를 “모든 것의 본질 없음”, “무아”, “자아죽음”, “꺼짐”, “소멸” 로 보는 사유의 흐름을 이어 나가고 있는데요.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조각과 사물이 지속해서 만들어 나갔던 관계성, 플랫폼으로서 자기 정의가 도달한 지점이 결국 “없는” 상태라는 것이 그동안의 모든 작업의 연결, 접속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이러한 자기 부정이 흥미롭기도 합니다.
모든 물질이 연결되고 서로 관통하여 흐르게 될 시공간이자 통로가 ‘구멍’일까요?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블랙홀처럼 구멍은 새로움을 발생시킬 창조적 통로가 될까요?
이 상태는 그레고리 마스 작가님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하였듯 “나설예TBEOL”일지도요. 그렇기에 정의하기를 보류해야겠습니다.
작가님의 말을 반복하고 첨언하면서 여러 이야기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서신을 보냅니다.
노해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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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편지
발신인: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2025년 7월 7일
‘구멍’은 모든 물질이 연결되고 서로를 통해 흐르는, 시공간으로서의 통로가 될 수 있을까?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내는 블랙홀처럼, 구멍은 새로움을 생성하는 창의적 통로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디테일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종종 어떤 상황에서 걸어 나오는지 혹은 들려 나오는지의 차이를 뜻한다. 블랙홀은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지는 데는 어떤 역할을 하는 듯하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수학적 소양도 없고, 30년의 시간적 여유도 없으며, 흥미로운 이야기도 없어서, 여기에 관해 열정적인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농담이다.
사실 이미 언급했듯이 블랙홀은 구멍이 아니다. 적절한 표현이 없어서 그렇게 불릴 뿐이다.
그 무엇도 블랙홀을 관통하지 않고, 시간조차 블랙홀을 지나지 않는다.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사건은 중요하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측정 불가능한 양의 방사선이 아주 조금 방출되는데, 이것을 스티븐 호킹은 소심하게 “부드러운 머리카락”이라고 불렀다: 호킹 복사.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증발해 사라진다.
우리는 시공간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는데, 공간이 마치 시간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야콥 베켄슈타인이라는 과학자의 연구에서 블랙홀 방사 개념을 슬쩍 가져와 자기 아이디어로 발표했고, 베켄슈타인은 현재 거의 잊힌 존재가 되었다.
새로움이란 당신이 모든 것을 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너무나 낭만적으로 들린다. 보통 이것은 18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이 ‘진정한’ 새로움은 다행히도 예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새로움이 변화를 불러오기 때문에 이를 좋아하지 않고, 따라서 이 개념은 언제나 환영받지 않는다.
따라서 당신이 너무나, 매우 창의적인 사람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움은 (이 차가 한 대 있으면 좋겠지만) 신형 맥라렌 W1 같은 것이 아니다.
겉으로는 우리가 새로운 우주를 간절히 바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아직, 아니 결코 닿을 수 없는, 접근이 가능하다 해도 사실은 닿지 못하는 우주가 이미 여럿 존재하고 있다. 멀티버스 이론의 실험이나 검증은 우리가 사는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므로 한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겉보기만 그럴 뿐이고, 진정한 쟁점은 ‘검증’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있다. “구멍은 구멍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이 통과할 수 있는 무언가이다.”라는 말은 음란하고 포르노그래피적이다. 포르노그래피도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지만, 사회적 관습이나 프로덕션의 미흡함 때문에 널리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하드코어 포르노가 아니라 에로틱 부동산 스릴러라고 할 수 있는 제스 프랑코 감독의 〈레즈비언 흡혈귀〉는 내가 아는 20세기 예술 중 가장 매혹적인 작품이다.
재밌는 사실: 최면술은 어설픈 도구이고, 조현병(내가 알기로는 그 어떤 정신 질환도)은 최면으로 치료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은 정신 분열적 대상을 만들어낼 수는 있다.
당신에게 질문한다.
“ 당신을 지금 최면을 거는 게 좋을까, 아니면 나중이 좋을까?”
전이는 정확히는 통로가 아니다.
지식, 감정, 정신 작용 같은 하나의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이동할 뿐이다.
1970년대에 마크라메 공예에서 세계 평화로의 전환(하하!)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언어, (자신과의) 대화, 약물, 인지행동치료(CBT), 자기자극치료(TMS), 경두개 직류자극치료(tDCS), 음악, 또는 운동요법에서 신경가소성으로의 전환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경 가소성은 매우 잘 작동하지만 말이다.
재밌는 사실: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거나 신경가소성을 촉진, 변화시키는 데는 평균 아홉 달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통로에는 큰 관심이 없으니, 이것을 사이 공간이라고 하자.
달빛이 비치는 문, 아니면 문이 없는 문, (사라진 문이 없는 자리에서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틈) 그 사이 공간—거기가 바로 우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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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uld “holes” be passages as space-time where all materials connect and flow through each other? Like black holes that can give birth to new universes, could holes become creative passages that generate newness? We like details. They are often the difference
between walking out of a situation and being carried out of it.
Black holes do not give birth to new universes, but they seem to play a role in the creation of new universes. I refuse to elucidate on this subject vehemently, based on the fact that I
have no knowledge, nor the mathematical savoir-faire and 30 years to spare, or anything interesting to say about it—just joking.
Actually, as I mentioned before, black holes are not holes; they are called holes for lack of a better term. Nothing passes through them; even time does not pass through a black hole. A black hole is best described by its event horizon. Events are important;
there are no events taking place beyond the event horizon.
They don’t give birth to anything much; they have a tiny bit of
unmeasurably small radiation emanations, which he shyly called a bit of soft hair: Hawking’s radiation. Over time, they kind of evaporate. We also prefer the term timespace, as seemingly space is made of time. He pilfered this idea (emanation from black holes) from the works of a scientist called Jacob Bekenstein and declared it his own; Bekenstein is now all but forgotten. Newness would infer that you know everything, which is not really possible. It also sounds awfully romantic; normally, this refers to 18th-century German romanticism, which it is not. The New (with a capital N) is thankfully not limited to art; people don’t like
the New, as it brings changes and thus is not always welcome, hence a problem if you are highly or tremendously creative. And I don’t mean the new McLaren W1; I’ve got to get one of those.
Seemingly, we are not in desperate need of new universes; there are quite a few already, which are not yet/ever accessible to us, and if they are, they are not.
The testing or verification of the multiverse theory is problematic, as it would take place in this universe, but that’s only seemingly a problem, more the issue surrounding the definition of the word “test.”
“A hole is something through which something that can also be a hole can pass” sounds not just almost obscenely pornographic. Pornography can very well
be art; it’s just not widely accepted due to mores and a general lack of production quality, which changes wildly over time.
Jesus Franco’s “Vampiros Lesbos,” which is not hard-core porn but more
of an erotic real-estate thriller, is one of the more hypnotizing artworks of the 20th century I know.
Fun fact: Hypnotism is a crude tool; you can’t heal schizophrenia through hypnosis (nor any other mental disorder as far as I know, which is not very), but you can produce a more schizophrenic object. I have a question for you: “Shall I hypnotize you now, or would you like to be hypnotized later?”
Transfer is not really a passage; you transfer one thing from one domain into another—knowledge, feelings, mentation—the 70s transfer of macramé to world peace (laughter!) did not work, nor did the transfer from language, talking (to yourself), drugs, CBT, TMS, tDCS, music, or physical exercise therapy to neuroplasticity, which works very well.
Fun fact: it takes about nine months, on average, to profoundly rewire,
neuroplasticize, or change your brain.
Passages are not so interesting to us, but let’s call it interstitia— the moonlit
gate, or even the gateless gate, the space in between (where the
moonlight shines through, where the missing gate is missing)—that’s what we thrive on.
Exhibition O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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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 예술로(路)소풍 전시 연계 교육프로그램
📢 〈톡톡, 작가님이 보낸 질문〉 안내
아르코미술관 예술로(路)소풍은 2025 아르코미술관 기획초대전《안티-셀프: 나에 반하여》 가 개막하는 8월 22일(금)부터 관람객분들이 자유롭게 참여하실 수 있는 전시 연계 활동을 진행합니다.
💌세부 활동 안내
작품으로부터 건네온 다섯 작가님의 질문이 엽서에 담겨 도착합니다. 관람객분들은 하나의 엽서를 선택하여 타자기 또는 손 글씨를 통해 나만의 답신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타자기의 두드림과 잉크, 나만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경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 장소: 아르코미술관 2층 아카이브라운지
▪ 대상: 어린이를 포함한 관람객 누구나
✅안내사항
- 별도의 예약 없이 현장에서 자유롭게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활동지는 미술관 2층 아카이브 라운지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 참여 과정에서 촬영된 사진이나 활동 결과물은 미술관의 홍보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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