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탁호텔 Sontag hotel Seoul


서울 중구 정동에 있던 우리 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 서양요리와 호텔식 커피숍 경영의 효시.
건축년도 : 1902년 신축, 1922년 철거
서양식 호텔로, 1902년(고종 39) 독일 여성 손탁(Sontag:한자명 孫鐸)이 건립하였다. 손탁은 1885년 초대 한국 주재 러시아 대리공사 베베르(Karl Ivanovich Veber)와 함께 서울에 도착해 베베르 부부의 추천으로 궁궐에 들어가 양식 조리와 외빈 접대를 담당하였다. 그러다 명성황후의 신임을 얻어 정계의 배후에서 활약하다가 1895년 고종으로부터 정동(貞洞)에 있는 가옥을 하사받아 외국인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하였다.
1902년 10월에는 이 가옥을 헐고 2층의 서양식 호텔을 지었는데, 이 호텔이 바로 손탁호텔이다. 1층은 보통실과 식당, 2층은 귀빈실로 이루어졌고, 1층과 2층의 창 사이의 벽을 작게 하고 벽 전면을 아케이드 모양로 구성하는 등 러시아의 전형적인 건물 형태를 취하였다. 미국을 주축으로 결성된 정동구락부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구한말 서구 열강의 외교관들이 외교 각축을 펼친 곳으로 유명하다.

손탁빈관(Sontag賓館)’이라고도 한다. 손탁(Sontag,A. 孫澤, 1854∼1925)은 1885년 10월 초대 주한 러시아공사 웨베르(Waeber,K. 韋貝)를 따라 내한하여 25년간(1885∼1909) 한국에서 생활하였다. 
손탁은 프랑스의 알자스 로렌 출신이지만, 보불전쟁(普佛戰爭: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의 전쟁. 1860∼1871년) 결과 이곳이 독일령이 되어 독일국적으로 내한, 러시아공사관의 보호를 받으며 활약하였다. 개항 초기 한국은 대외교섭상 외국어에 능통한 인물이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손탁은 영·독·프·러 등 각국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재빨리 습득하였다. 이에 손탁은 웨베르 공사의 추천으로 궁내부(宮內府)에서 외국인 접대업무를 담당하면서 대군주(고종) 및 민비(명성황후)와 친밀하게 되었다.
손탁은 궁내부와 러시아공사관의 연결책을 담당, ‘한러밀약’을 추진하는 등 친러거청(親露拒淸)정책을 수립, 반청(反淸)운동을 통해 조선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녀의 독립운동 공로가 인정되어 조선정부는 1895년 서울 정동 29번지 소재 1,184평 대지의 한옥 한 채(현 이화여자고등학교)를 하사하였다.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한국 최초의 배일정치단체인 정동구락부(貞洞俱樂部)가 친미파 이완용(李完用)에 의해 발족되었다.


<손탁호텔> 국립극장 

(1976년, 차범석작, 이해랑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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