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山水에 민화의 익살 더해… ‘한국성’에서 길 찾는 작가들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전  

김나영·마스 부부의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

전통의 새 해석으로 K아트 답 제시

전시장에 차려진 기암괴석 설치 작품이 조야하면서도 해학적이라 전통 민화에서 튀어나온 듯 정겹다. 바위는 위로 솟았는데, 바위에 칠해진 수묵의 붓질이 문인화적인 향취를 모방하고자 하는 서민의 욕망을 슬그머니 드러낸다.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K-컬처의 온기가 주변부로 확산하는 가운데, 한국성에서 K-아트의 답을 찾는 작가들이 있어 주목된다.

먼저 작가 그룹 이끼바위쿠르르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하는 개인전 ‘거꾸로 사는 돌’을 소개하고자 한다. 2022년 독일 카셀에서 열린 현대미술제전 카셀 도큐멘타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은 이끼바위쿠르르가 이번 개인전을 통해 주목한 것 중 하나는 조선시대에 ‘산수’로 불렸던 한국의 산하 풍경이다.
이끼바위쿠르르는 한국의 산천 외진 곳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 돌 조각을 전통의 탁본 기법으로 찍어 전시장에 회화처럼 걸었다. 먹이 아니라, 장지에 숯으로 탁본을 해 서민적인 느낌을 내면서도 서구의 재료인 목탄의 질감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입체도 시도했다. 중중첩첩 펼쳐지는 산속에서 하나의 정경을 이루는 기암괴석을 지점토와 먹을 활용해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조선 18세기 최고 산수화가 겸재 정선의 산수화를 19세기 무명의 작가가 모방해 그린 민화 산수화가 주는 푸근함이 있다. 조지은씨는 최근 전시장에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기후 위기의 시대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대상으로 파악했던 동양의 산수화가 주는 위로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끼가 덮인 바위를 뜻하는 ‘이끼바위’와 의성어 ‘쿠르르’를 합친 이끼바위쿠르르는 조씨와 함께 고결, 김중원 등 연령대가 다른 세 명의 작가로 구성돼 2021년에 데뷔했다. 조씨만 미술을 전공했지 김씨는 밴드 보컬을, 고결은 연극영화학과를 잠시 전공한 독특한 조합이다. 전시는 26일까지.
자수 족자에 파리채를 붙여 해학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의 '꽃 낮잠 3'(2024, 혼합매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하는 부부 작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독일)의 개인전 ‘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에서도 한국의 전통을 느낄 수 있다. 개념미술을 하는 이들 부부 작가는 오브제(사물) 간의 기이한 조합을 통해 상투성을 넘어 놀랍고도 풍부한 해석이 가능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열쇠고리, 옷걸이, 고무대야 등 일상의 자질구레한 물건을 끌어와 해학적인 세계를 선보였던 부부는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전통적 요소를 끌어왔다.
전시장 곳곳에서 붓글씨, 병풍, 자수, 족자 등 한국적 요소를 만날 수 있다. 전시 제목을 영어 붓글씨로 쓴 8폭 병풍 ‘PARANOIA PARADIDE(파라노이아 파라다이스)’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자수 회화 가운데는 특히 장미꽃이 수놓인 족자에 난데없이 플라스틱 파리채가 붙어 있는 게 눈에 띈다. 그 생뚱한 조합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장미는 해방 이후 애호되던 족자의 소재인데, 작가는 거기에 뜬금없이 조야한 파리채를 붙인 것이다. 김 작가는 “병풍을 취미 삼아 수집한 게 10년이 넘지만 전시에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파라다이스는 꽃과 꿀이 흐르는 이상향이다. 그 꿈을 파리채로 ‘꿈 깨!’라며 직시하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월 2일까지.

2025-01-22 국민일보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373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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