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양의 그릇가게 H's Tableware & Crockery

불의 유혹-장작가마에서 구운 다완
중앙에 마치 곰팡이처럼 볼록볼록 묘한 문양이 있는 이 다완은 K작가의 어머님께서 장작가마 기법으로 손수 만드신 것입니다. 장작가마 기법이란 자기를 굽는 한국의 전통 기법으로, 흙으로 쌓아서 만든전통 방식의 장작가마에 나무로 불을 지펴 1300도까지 올려서 구워내는 기법이라고 합니다. 이 기법으로 그릇을 구워내기 위해서는 도공들이 가마 앞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면서 며칠을 꼬박 새우기도 할 만큼 까다롭게 불 관리를 해야 하지만, 좋은 만큼 값어치를 하는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는 수많은 변수들 때문에 성공률은 40%대로 희박하다고 합니다. 그릇을 만들어내는 장인들로서는 애가 탈 노릇이지요.
K작가의 어머님은 다른 일에 오랫동안 종사하시다가 은퇴 후 도자기 굽는 일에 빠져 근 20여년 간 작업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전통가마 기법 중에서도 K작가 어머님은 독특하게 유약을 전혀 바르지 않고 조합토 안의 다양한 성분과 가마 안에서 날리는 재의 영향만을 이용하여 우연히 생기는 광택과 문양을 얻어 내신다고 합니다. 실제로 어머님이 만드신 그릇들을 보면 유약을 쓰지 않았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의 아름다운 광택이 살아 있습니다.
장작가마 기법으로 만든 그릇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이 기법이 살아 움직이는 불의 흔적이 만들어낸 색상과 문양을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요변현상이라고 하는 불길이 지나는 흔적과 그에 따른 우연한 자국들은 실제로 봐도 도공이 그린 그림들을 능가할 만큼 신비롭습니다. 이 그릇 안쪽의 주황색 문양도 조합토 안의 다양한 성분과 불이 함께 반응하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불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릇. 영화 <취화선>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릅니다. 세상을 등지고 떠돌던 장승업은 말년에 신분을 속이고 한 도공의 가마로 흘러들어 그릇에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가마 앞의 불을 지그시 바라보던 장면, 그 눈빛. 그가 없는 다음 장면을 통해 관객들은 화가가 가마 안으로 기어들어가 스스로를 불태운 것일거라는 암시를 받습니다.
좀 다르기는 하지만 밤바다도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저는 청소년기를 부산에서 보냈는데, 깜깜한 밤바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깊이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이상한 충동 같은걸 종종 느낄 때 있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깊고 어두운, 강렬한 것에의 이끌림인데, 언어로 표현이 힘드네요.
화가가 불 속으로 들어가버린 듯한 그 장면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래 전 광안리 바닷가에서 제가 느꼈던 것 같은 야릇한 느낌을 불에서 받았다고 상상하면 어떨까요? 아니면 그렇게 마지막 남은 얼마 안되는 자신을 불살라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싶었던 화가의 마지막 바램 같은 것, 그러니까 영원, 그런 것을 꿈꾸었던 것일까요?
Mar. 2018
work by 황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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