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ing with the Rhyme 展

2011.02.16 ▶ 03.27
금호미술관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외부기획전시로 13명의 작가들의 다양한 전시가 ‘운율에 맞춰 춤을 추’면서 전체 전시를 구성한다. 처음에 전시 제목을 보고서는, 13명의 작업을 묶는 운율이라는 주제가 하나의 전시를 의미 있게 엮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주제 자체가 식상하기도 했고 너무나 포괄적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전시는 논리적으로 정연한 구성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관람자의 감성을 이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展은 ‘이게 뭐지, 뭘까’ 하면서 쓱쓱 넘어가는 전시가 아니라, 발길을 잡고 한동안 바라보게 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작품 하나하나의 설명을 ‘읽어야 할’ 필요 없었고, 발걸음을 따라 시선을 따라 느끼면서 감상했다. 또한 이 전시는 국내작가뿐 아니라 파리, 비엔나, 싱가폴, 뉴욕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어 풍부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1층 리셉션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작은 공간엔 히맨 청, 크리스토프 마이어, 노재운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얀 벽에 설치된 글자 작업은 Heman Chung 히맨 청의 시리즈로, 어디에선가의 여정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다. 싱가폴과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는 리처드 롱의 워킹 퍼포먼스를 참고하여 그가 거닐었던 육체적 경험을 문자화하였다. 관람자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각각 다른 감각을 불러 일으켜 새로운 맥락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된다. 텍스트가 전시된 벽 아래로 크리스토프 마이어의 레디메이드 조각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크리스토프 마이어는 에서 일상 오브제와 미술관 가구들을 건축적으로 구성하여 bar를 연상시키는 공간을 만들었다. 전시실은 관객들이 참여하는 공간이 되면서, 그것 자체로 퍼포먼스적인 작업이 된다. 히맨 청과 크리스토프 마이어의 작업이 가벼운 리듬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정신적이고 감각적으로 육체적 경험을 하는 중에, 한편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노재운의 작업은 상당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비석의 형상을 가진 금속 비(碑)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 시간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항성시 Stardate’를 적용한 시간으로, 이는 SF드라마에 나오는 시간개념이라 한다. 우리는 다른 시간개념이 적용된 그의 개인적인 시간을 표면적인 관찰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아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우리의 세속적인 시간관념을 흩뜨린다.

지하 1층은 수십 개의 전구가 내는 빛으로 화사한 분위기가 감돈다. 최승훈+박선민의 는 영문점자 텍스트 모양으로 전구를 배치한  작업이다. 이 빛을 머금으며 자리하고 있는, 최선아 & 크리스토프 마이어의 작업<2>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활동 중인 두 작가의 협업작업이다. 이 둘은 우편으로 작품을 보내면서 6장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작품만 보아서는 자세한 맥락을 알 길이 없지만,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두 작가의 관계 속에서 피어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당히 감동적이다. 박주연의 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반을 불법 복제한 판 위에 종이 꽃가루를 뿌린 작업이다. 초록빛에서 푸른빛, 그리고 붉은빛으로 이어지는 이미지물결에서 그 시대를 물들였던 이야기들과 추억들이 흐르는 것만 같다. 안쪽 전시장엔 최승훈+박선민의 영상작업 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풍경을 전시장으로 가져온다. 소리가 더해지면서 어떤 희미한 기억을 불러일으켰고, 동시에 그 속에서 느린 삶을 느껴볼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이리저리 놓여 있는 아주 많은 작품들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그들이 과거에 전시했던 작품들과 신작들을 가지고 그들만의 이야기와 리듬을 구성하였다. 오브제들 사이를 걸으며 하나하나 살펴보는 경험은 전시의 주제처럼 운율을 타고 춤을 추는 것과도 같았다. 
안쪽 전시실의 최선아의 작품은 동전을 구성하는 재료와 동전의 형태를 작업으로 끌어내었다. 첫 번째 작품에서 작가는 동전에 사용되는 강철, 황동, 구리, 알루미늄 재료 각각에 형태를 부여하였고, 두 번째 작품에서는 나무합판에 유로와 한국원화의 동전 크기의 구멍을 뚫었다. 동전이라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물건은 직접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작가의 사고와 손을 통해 세계 속의 한 존재가 되었다. 다음으로, 믈라딘 비즈믹의 는 건축 포트폴리오에서 발췌한 사진들을 꼴라주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빛바랜 옛날 건축 사진이 새롭게 변형되면서 더욱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을 건물들이 그가 사진을 선택하고 변형시키면서 현재의 시간과 얽혀버린다. 이 작품에서는 순간을 포착한다는 사진이미지가 마치 진짜가 아닌 환상처럼 느껴졌다.

3층의 첫 번째 전시공간에는 작은 두 개의 영상작업이 빛을 거의 발하지 않은 채 따로 떨어져 전시되어있다. 유현미의 <내안의나 The self within>는 뇌와 심장 사이의 촛불이 타들어가는 영상과 작가가 직접 쓴 시가 올라가는 영상으로 구성되어있다. 의미심장한 화면과 더욱 의미심장한 시를 보면서, 관객은 각자의 삶과 결부된 서로 다른 감상을 할 것이다. 이어지는 다음 전시실에 들어서서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조은지의 이다. 작가는 작품의 제목이 뜻하는 바와 같이, 커다란 흰 캔버스에 진흙을 던져 한편의 시를 지었다. 벽에서 늘어져 내려오는 캔버스의 형태와 더불어, 툭툭 던져진 작가의 흔적들이 전시공간을 더욱 리듬감 있게 만든다. 김오안은 시리즈에서 살아가면서 하찮게 여겨지고 쉽게 지나치게 되는 장소와 물건들을 찍고 그에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을 하였다. 벽 아래 떨어져 있는 하얀 비닐봉지에 붙여진 ‘가방’이라는 단어와, 그 아래에 무심코 그어진 것 같은 선 하나까지 감동적이었다. 

3월답지 않게 꽤나 쌀쌀하지만 봄의 기운이 이곳저곳서 피어나고 있다. 이런 계절엔 겨울의 웅크린 몸짓을 깨고 일어나 전시장으로 나서고 싶어진다.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展이 바로 이런 봄에 작은 감탄을 자아내는 전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전시는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13명의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율동가이드 같다. 다른 언어, 다른 내용이지만 다름 속에서 하나로 관통하는 운율의 흐름이 우리 감성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리라 생각한다.
뮤움닷컴 인턴기자 이현지 (2011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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