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진비엔날레를 겪고서_이영준


유배된 영토, 비엔날레

CONTEMPORARY ART JOURNAL 2012년 가을 / 11호Autumn 2012 Vol.11 


발행인_김경희 || 편집인_심상용 || 편집장_정형탁 || 분류_잡지(계간) || 판형_210×287mm



이영준 / 기계비평가대구사진비엔날레를 겪고서 대구에서 택시를 탔다. 뒤에 앰뷸런스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내가 탄 택시를 포함해서, 단 한 대의 차도 앰뷸런스에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십여 분 달리는 내내 앰뷸런스는 택시 뒷거울 속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올 뿐 절대로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위급한 환자가 길을 비켜주지 않는 차들 때문에 앰뷸런스 안에서 숨을 거둘 수 있는 무서운 도시가 대구다. (서울에서는 좀 비켜주는 편이다. 뉴욕에서는 홍해가 갈라지듯이 차들이 갈라져서 앰뷸런스가 뚫고 달릴 수 있다)
그런 도시에서 국제적인 사진비엔날레를 한 다는 것은 뭔가 잘못 된 일이다. 나는 그 잘못된 점들을 대구사진비엔날레의 특별전 하나를 만들면서 다 겪었다. 물론 가장 큰 잘못은 내게 있다. 대구라는 도시에서 새로운 사진의 개념을 실험하겠다고 나선 내가 바보였다. 누울 자릴 보고 자리 펴랬다고, 대구는 내가 누울 자리가 아니었다. 내가 기획한 전시가 열린 대구예술발전소 근처에 대구시민야구장이 있어서 야구를 보러 갔는데, 거기서 나는 경상도의 화끈함과 동시에 폐쇄성을 봤다. 스탠드에 앉은 관중들이 야구의 열기에 휩싸여 서로 모르던 사람들끼리 그 자리에서 친해져서 마구 떠드는데,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경상도 사투리 속에서 하나가 됐다. 그리고 나는 남이었다. “우리가 남이가”는 나를 빼고 하는 말이었다.

(...)

http://www.cajournal.co.kr/Dec. 2012Seoul

댓글 1개:

  1. 자신의 특수한 경험을 보편적인 진리로 여기고, 무책임한 지역폄하를 일삼는 깃털처럼 가벼운 의식 수준의 사람이 숭고한 "예술"과 "미"를 논하는 일을 하며 활개침이 가능한 한국적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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