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의 놀이터

 김나영, 그레고리 마스(이하 김 & 마스라고 칭함) 작가 듀오가 새로 발간한 작품도록에서 가장 오래 눈길을 둔 페이지는 다름 아닌 '차례'였다. 
나는 그들의 작품 이름 또는 전시 제목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 바로 갈색!」,「머리를 써라」,「시스템의 목적은 그 시스템이 하는 일」,「심연도 당신을 응시하고 있다」같은 제목은 그대로 각각 따옴표를 붙여 부조리 연극의 대사로 쓰면 좋을 것 같다.「권태의 섬」,「개념은 재활중」은 소설가도 탐낼 법하다. 
현대 미술에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읽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종종 그 작품의 제목에 기대어 본다. 
그러나 김 & 마스의 제목들이 그들의 작업에 대해 구체적인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자주 배반당하고 마는 경험이다. 
'하와이에는 왜 맥주가 없는지'에 대한 대답을 바람 빠진 럭비공 모양을 한 '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알려줄 수 있을까? 게다가 그녀는 도대체 왜 바둑판 위에 올라 앉아 있는 것일까? 
가끔 모순적 상황이라는 전제 안에서, 제목과 작품이 호응관계를 이루는 경우도 본다. 
오사카의 호텔방에서 열린「최상의 이웃」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맞은편 건물을 향해 접혀진 침대와 그 건물의 모양을 본 딴 창문 드로잉을 엮어 주고 있고, 크고 작은 사람 모양의 피규어들을 각각 두 세 개씩 단상에 올려 만든「관계 부재」라는 작품은 오히려 그 피규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관계적 형태'를 돌아보게 만든다. 
앞뒤의 의미는 배반하면서 오로지 운율로만 연결된 단어의 조합들처럼 그들의 작품에는 모순적인 사물들이 서로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다. 
와인잔이 아슬아슬 기울어진 좌대 위에 얹혀져 있고, 커다란 목욕탕 표지물이 극장 건물 꼭대기에 붙어 빙글빙글 돈다. 
대체로 다수의 설치물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전시장에서 각각의 작품들은 마치 한 명 한 명의 인물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전시장 전체를 자기 동네 삼아 들리지는 않지만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 사이에 이동의 동선도 있고 웃기거나 음흉한 사건도 생겨나고 있다. 보일 듯 말 듯, 또 들릴 듯 말 듯한 이 조바심 나는 세계, 분명 뭔가 있는 세계가 전시장 안에 펼쳐지곤 한다.
그러나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한 비현실적인 일이자 비효율적인 학습에 틀림없다. 
김 & 마스가 만들어내는 작업은 우리가 흔히 익숙해져 있는 사물의 기호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문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상에서 또는 잦은 여행 중에 포착한 사물과 이미지들을 그러모아 주어-동사-목적어의 문법이 성립하지 않는 기괴한 문장쓰기와 같은 설치를 만든다. 
이렇게 의미 해석의 고리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비현실적 조합의 사물들이 우리가 의존하는 관습적인 이해의 법칙을 배반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것을 조롱하곤 한다. 
너무 '잘 훈련된 눈'을 가진 사람들이 빠져있는 함정, 그 경직된 언어의 덫에서 탈출해야 이 요상한 세계의 풍경이 오롯이 눈에 들어오고 그 사물의 영리하거나 어리숙한 캐릭터도 읽을 수 있게 된다. 
김 & 마스가 전시장 천정에 매달았던 커다란 3D 안경처럼 좌우의 눈에 각도를 달리하는 차원의 전환에서부터 낯선 것이 즐거운 수다를 풀어내는 사건이 가능하다. 
그래서 누구라도 김 & 마스가 만들어 낸 풍경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라면, 긴장을 풀고 편하게 앉아 사물들이 사고치는 모습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누가 누구와 옷을 바꿔 입고 앉았는지, 어떤 엉뚱한 팔과 다리가 서로 맞붙어서 발버둥치고 있는지 말이다. 
김 & 마스가 제안하는 제목의 문장들이 그들 작품의 의미를 지칭하지는 않지만 작품이 조합되는 시각적 형식과는 닿아 있다고 본다. 
둥그런 모음이 반복되는 시의 문장처럼 사물은 회전하는 리듬을 만들고, 가지런히 정렬된 도표 뒤에는 대립하는 한 쌍의 문장들이 서로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왜'라는 질문을 잠시 덮고, 맥락의 해독이라는 무거운 과제에서 벗어나 사물과 사물이 서로 공을 던지며 노는 풍경을 응시하다 보면 정체된 공간에 숨겨진 운동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 김해주
Feb. 2013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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