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타임 Playtime - 모래극장 (Theater of Sand)

Production Meeting
Culture Station Seoul 문화역 서울
Sep. 2012
Seoul




기획: 김해주

모래극장 (Theater of Sand)

만일 공간이 무한하다면 우리는 공간의 모든 곳에 있다고 있지요. 만일 시간이 무한하다면 우리는 모든 시간 속에 있다고 있는 거지요.루이스 보르헤스, <모래의 >

퍼포먼스는 미술은 물론 연극, 음악, 무용과 같은 공연예술에서 두루 사용되는 용어이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기본적인 특성 외에 각기 다른 여러 장르의 퍼포먼스에서 교집합으로 도출할 있는 특성이 있다면 아마도 서사적 성격일 것이다. 희곡을 기본으로 하는 연극은 물론이고, 미술에 있어서의 다수의 퍼포먼스도 사실과 픽션의 구분을 넘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서 작품을 구축하곤 한다. 서사란 기본적으로 시간과 논리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뜻하지만 실은 그것을 전달 받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각자의 상을 그려내기 위한 최초의 단서이거나 장치로 보는 것이 맞다. 서사를 단순히 픽션의 세계로 관객들을 함몰시키거나 정의 과잉으로 이끄는 묘약이 아니라 창작자가 가지고 있는 개념의 조합으로 이해할 서사의 변용 방식은 무한해진다. 사실 우리의 사고 과정이 상당 부분 언어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이미 우리의 일상은 문장 만들기, 서사적 구성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게다가 퍼포먼스의 주요 개념인 수행성(Performativity) 하더라도 언어의 이해를 통한 행동의 발현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가.

서사는 시간을 품는다. 철학자 리쾨르는 시간과 이야기(Temps et recit) 관한 방대한 저서에서 시간은 서사적 방식으로 진술되는 한에 있어서 인간의 시간이 되며, 반면에 이야기는 시간 경험의 특징들을 그리는 한에 있어서 의미를 갖는다.라고 한다. 이야기되는 모든 것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며 시간적으로 전개된다. 역으로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모든 것은 이야기될 있다. 모든 시간적 과정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될 있다는 한에서만 시간적인 것으로 인식될 있으리라는 것이 리쾨르의 출발점이며 이것은 실제 있었던 일을 기술하고자 하는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허구적 이야기 구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면에서 그는 모든 이야기하기 시도에 전제되는 것이 시간성이라고 본다.

모래극장에는 무대도 고정 좌석도 벽도 없다. 모래극장의 레퍼토리는 관객 각자의 시간 조합에 따라 무한한 경우의 수로 확장된다. 이곳은 시간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서사의 변주를 경험하는 장소이다. 조형적 언어와 연극적 서사 만들기의 유사성에서 출발한 김나영, 그레고리 마스와 최치언의 협업, 문화역 서울의 역사와 기억에서 출발하여 관람자 머리 속에서 발생될 퍼포먼스를 위한 장치를 제안할 남화연과, 동일한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소리를 통해 기억을 재구성 김아영의 작업, 분절과 재조합이라는 포스트 프로덕션의 재료로서 서사를 다루게 장영규, 서사를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장치로 생각하여 서사-배우를 직접 연결하는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작업, 그리고 오페라 음악을 매개로 작가 자신에서부터 퍼포머, 그리고 여성 전체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자기희생이라는 고전적 서사 테마를 중첩시키는 노르마 , 그리고 기존 서사를 독특한 장면구성으로 전복하여 새로운 시각적 효과를 노리는 극단 성북동 비둘기와 동시간의 퍼포먼스를 영화적으로 편집하여 현재-회상 구조를 표현하는 극단 집시의 워크숍까지. 모래 극장에서는 기억과 역사를 품은 서사, 혹은 도구와 은유로 활용된 다양한 서사들이 설치, 영상 또는 퍼포머의 몸을 타고 순간 응고되었다가 사라질 것이다.


글: 김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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