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도 침 흘리는 ‘라면 탐식’의 아이러니



음식 비평부터 식품영양학과 생리학, 게임이론, 예술비평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라면에 대해 이런저런 논란과 담론 나와

연간 소비량 36억개이고 국민 1인당 소비량으로 따지면 연간 80개인 가공식품이 라면이다. 이 정도면 한국 사람이 밥과 김치 다음으로 많이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라면에는 늘 ‘몸에 안 좋은 인스턴트 식품’이라는 꼬리표가 달리지만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멈추지 않고 있다. 서민의 음식이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심리적 저항선이라는 개당 1천원대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시장에서 성공한 하얀 국물 라면이 수훈갑 역할을 했다.

비난을 받으면서도, 국민 소득이 올랐음에도 라면의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1963년 라면이 한국 사회에 첫선을 보였을 때 국민 소득은 100달러였고, 지금은 2만 달러 시대이다. 최근에 라면 시장은 ‘하얀 국물’이라는 마케팅 이벤트까지 더해지면서 시장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상품 분야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음식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는 ‘하얀 국물’ 경쟁에 대해 “1990년대 이후 여행 자유화 바람으로 일본식 생라멘 등 다양한 라면 맛을 본 사람이 늘어가면서 ‘라면은 빨간 국물’이라는 생각이 바뀌고 있는 듯하다. 업체 쪽에서는 스스로 새 시장을 창출한다기보다는 소비자의 수요가 생겼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을 때 제품을 내놓는다. 생라멘 비슷한 것을 내놓아도 소비자가 따라올 것이라는 판단 아래 흰 국물 라면을 출시했을 것이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양한 이슈로 정체되어 있던 시장 키워

황칼럼니스트의 말대로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의 성공은 최근 외식 시장에서 일본식 생라멘 가게의 붐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나가사끼 짬뽕은 돼지뼈 육수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일본 생라멘의 육수 스타일에 좀 더 가깝다. 삼양에서는 후속타로 역시 돼지뼈 육수를 사용한 ‘돈라면’을 내놓았다. 한국 사람 입맛에도 돼지뼈 육수가 맞는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라면 시장 선두 업체이지만 하얀 국물 이슈에서 소외되었던 농심도 라면 국물 색깔 마케팅 이슈가 싫지 않다는 표정이다. 농심은 “정체되어 있던 라면 시장에 다양한 이슈가 등장해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라면 시장 자체가 커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 점을 들어 황칼럼니스트는 최근의 ‘하얀 국물’ 논쟁이 라면제조업자들의 상업적 이해에 따라 ‘뻥튀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온 국민이 라면 회사의 마케팅에 놀아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업체들이 새 제품 출시 마케팅 수단으로 국물 색깔 논쟁을 벌이고, 뒤로는 가격을 올리는 얄팍한 장사를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음식은 경제력’이라는 주장을 폈다. “맛으로 음식을 선택한다기보다는 경제력과 상관이 있다”라는 것이다.

황칼럼니스트는 “떡볶이·닭강정·매운탕 등 한국 대중 음식의 기본은 짜고 달고 매운맛이다. 이것은 식재료의 맛이 아니라 양념의 맛이다. 좋은 식재료가 아닐수록 과한 양념으로 맛을 흉내 낸다. 최근에 인기를 끈 라면에도 짜고 매운 성분이 빠지지 않는다. 라면 자체가 그런 원칙에 충실한 상품이다. 우리 국민들이 양념이 아닌 좋은 식재료에서 우러난 맛을 느끼고 조리하거나 사먹을 여력이 생길 때 인스턴트 라면이 없어질 것이다. 일본에서는 우리처럼 인스턴트 라면이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인스턴트 라면이 염도가 높고, 양념으로 맛을 내 탄수화물 외에는 이렇다 할 영양소가 들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열량만 보장하지 영양 균형이 잡힌 좋은 식품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라면에 늘 따라붙는 ‘정크 푸드’ 논란의 출발점도 바로 여기이다.

최근에는 외신을 타고 날아온 위 내시경 사진이 라면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기도 했다. 미국의 미디어아티스트와 ‘하버드 대학 소화기 학자’라는 사람의 공동 작업 결과물이라는 해설이 붙어 있는 사진에는 먹은 지 두 시간이 된 라면 면발이 위 속에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한승 신라대 바이오식품소재학과 교수는 “미디어에 소개되는 식품 관련 ‘과학 기사’ 중 실험 조건이 제대로 충족된 ‘과학적’ 결과를 보기 힘들다”라는 의견을 냈다.

그는 ‘라면이 염도가 높다’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한식의 국이나 탕류가 갖고 있는 공통된 문제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라면보다 우동에 들어가는 소금의 양이 더 많다. 라면을 튀길 때 쓰는 기름이 포화지방이라고 문제 삼는데 삼겹살을 생각하면 극히 적은 양이다”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식품의 기본은 골고루 먹는 것이다. 한 종류의 식품을 계속 먹는 것은 무엇을 먹어도 나쁘다. 밥은 다른 반찬을 골고루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라면은 곁들이는 것이 김치 정도이다. 그런 점이 나쁜 것이지 라면 자체가 나쁜 식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라면이 ‘나쁜 식품이 아니다’라는 말은 라면 소비자에게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왜 가공식품 중에서도 유독 라면이 인기가 높은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이런 의문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예술계에서 거들고 나왔다.

라면의 인기 요인 밝히고 설명하는 ‘쇼’ 등장

미술사를 전공하고 예술비평을 하는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와 서울대에서 과학기술사를 전공한 젊은 여성과학자그룹 뮤즈S가 라면을 주제로 ‘과학 쇼’를 만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라면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과학적 방법론’을 빌려서 공연하는 것이다. 이 쇼의 이름은 ‘라면 앙상블’.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에 초대된 이 쇼는 오는 3월28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영준 교수는 심지어 ‘남자라면’이라는 상표까지 등장하는 라면의 남성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왜 군대에서 먹은 라면은 더 맛있었다고 기억하게 되는 것일까 등을 과학이라는 형식과 과학 용어를 빌려와 쇼를 만들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여성 과학인들은 ‘라면에 대한 시각적인 정보를 받았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게임 이론 등으로 라면의 인기 요인을 설명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과학이라는 틀로 대중에게 말을 거는 ‘쇼’이다. 그래서 라면의 시각 정보를 받아들였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여성의 사진을 보았을 때 반응하는 뇌 부위와 가깝다거나 라면을 대량으로 끓이면 남성 호르몬 작동 기제와 비슷한 화합물이 생성된다는 ‘구라’가 ‘과학적’으로 거론된다. 한국인이 라면을 사랑하는 이유가 한국에서 뱀과 개구리가 씨가 마르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라는 ‘진지한 농담’을 던진 것이다. 물론 게임 이론을 통해 남자들이 왜 라면을 먹는 것에 열중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도 등장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임소연 연구원은 게임 이론을 적용해 “남성 집단에서 발견되는 집단 라면 섭식 행위가 호혜적 이타주의에 의한 것으로, 1회 라면 섭취에 참여하는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혼자 먹는 것보다 개별 남성이 취할 수 있는 이익이 크다”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즉 라면을 혼자 끓여 먹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먹는 것이 더 맛있고, 먹을 기회도 더 많다는 것이다. 라면은 인문학과 과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들여다볼 만큼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라면에 대한 궁금증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풀어주는 쇼 형식의 ‘라면 앙상블’(왼쪽).
수도방위사령부 장병들이 대민 봉사 현장에서 라면을 먹고 있다(오른쪽). ⓒ Muse S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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